제사상에 올리는 냉수를 현주(玄酒)라 부른다. 현주는 술이 아니라, 맑디맑은 물이다. 새벽에 아무도 긷지 않은 우물에서 길어온 정화수(井華水)다. 물을 검은 술(玄酒)이라 한 것은, 지극한 술은 무미(無味)이기 때문이며 신에겐 물이 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지만, 술 한 잔 제사상에 올릴 형편도 안 되는 궁한 자손이 가난한 마음을 다해 올리는 무술(물로 된 술)이 현주다. 현주는 오로지 정성이라 하였다.
옛사람은 술자리를 베풀 때 먼저 현주 한 잔을 마셨다. 주인이 냉수를 권하지 않는 술자리는 무례하다 하였다. 술잔부터 내미는 것은 야인(野人)에게나 하는 태도였다. 술자리 현주 풍습은 황실에서 전해진 것이라 한다.
황제는 주연에 앞서 신하들에게 물 한 잔씩을 마시게 했으며 그것을 현주라 불렀다. 냉수를 먼저 내리는 뜻은 황제 앞에서 감히 취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었고, 술을 물처럼 마시지 말라는 뜻도 있었으며, 술도 결국 물이니 헛되이 과하게 탐하지 말라는 충고도 숨어 있었다.
음수사원은 고향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북주의 유신(庾信)은 서위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서위의 왕이 그를 본 뒤 인품에 반해 28년간이나 붙잡아뒀다. 유신이 남긴 '징조곡(徵調曲)'에 이런 시가 있다.
落其實者思其樹(낙기실자사기수)
飮其流者懷其源(음기유자회기원)
그 열매를 따노라면, 그 나무를 떠올리고
그 물을 마시노라면, 그 샘을 떠올리네
북주에도 그런 나무가 있었을까. 고향 생각을 달래라고 왕이 건네준 그 열매를 먹노라니, 그 열매가 매달렸던 나무의 나무의 나무로 올라가 북주가 생각나는 것이다. 보고픈 옛사람을 잊으려고 물 한 잔을 마시려 하니, 그 물줄기의 물줄기의 물줄기로 올라가 북주에 있는 사람이 조롱박에 떠올린 그 물 한 바가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이토록 간절한 회귀의 마음이 '음수사원'이다.
물 한 잔 마시며, 내가 흘러온 시간의 시간의 시간으로 돌아가 그 첫 모금을 떠올리는 현주(玄酒) 한 잔의 밤. 그리운 것이 괜히 더 그립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 한 잔이 이리도 감미로운 것이다. 어머니와 할머니와 그 윗대 할머니의 목을 축이며 내려온 생명 하나의 물방울이 이리도 서늘한 것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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