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양호 회장은 대한민국 항공산업 위상 강화 외에 민간 외교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자녀의 땅콩갑질, 물컵갑질 등 도덕성 논란으로 지탄을 받았지만, 그가 항공사에 남긴 업적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을 거쳐 조중훈 창업주가 타계한 이듬해인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를 올해 총 166대까지 늘리며 몸집을 키웠다.
국제선 노선도 일본 3개 도시에서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했다. 국제선 여객 운행 횟수는 출범 당시보다 154배 늘었고, 연간 수송 여객 수는 38배가 증가했다. 매출액은 3500배, 자산은 4280배나 커졌다. 지난해 매출은 12조6512억원으로 전년(11조8028억원)에 비해 7.2% 증가했다. 이는 2012년 최대 매출액(12조2638억원)을 넘어서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결단력도 성장의 토대가 됐다. 조 회장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 간의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보고 2008년 진에어(Jin Air)를 창립했다. 진에어는 현재 저비용 신규 수요 창출의 통로가 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 매각 후 재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한 사례도 유명하다. 그는 1998년 외환위기가 진행될 때 보잉737NG(Next Generation) 주력 모델인 보잉 737-800 및 보잉737-900 기종 27대의 구매 계약을 유리한 조건으로 체결하기도 했다.
한진해운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 회장은 한진해운 경영정상화를 위해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 처리되면서 뼈아픈 시간을 겪어야만 했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오는 6월 국내 개최 예정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를 대한항공의 최대 결실로 꼽았다. 전 세계 290여개 항공사가 대거 집결하는 총회로서 '항공업계 유엔회의'로 불릴 정도다.
회사 관계자는 "개별 항공사의 업적이 아니라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글로벌 수준까지 끌어올렸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Board of Governors) 위원을 맡아왔다.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 10개월간 50차례에 걸친 해외 출장, 약 64만㎞(지구 16바퀴)를 이동해 유치를 성공시켰다.
이처럼 대한항공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지만 조 회장 개인적으로는 오너가 갑질 논란, 사내이사직 박탈 등 굴욕을 겪기도 했다. 2014년 12월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을 시작으로 여론은 등을 돌렸고 이후 '물컵 갑질', '폭행 및 폭언' 등에 연루되면서 국민들의 시선이 악화됐다. 이로 인해 조 회장은 지난달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20년간 유지했던 대표이시직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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