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각국 정부는 가짜뉴스와 전면전을 선포하고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법안을 추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공공의 안녕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선거 앞두고 들끓는 가짜뉴스
유언비어나 거짓말이 나도는 건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이슈가 되는 건 유언비어나 거짓말이 언론이나 보도를 사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가짜뉴스다. 이런 가짜뉴스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전례 없는 수준으로 빠르고 넓게 퍼져나가고 있다. 가짜뉴스의 영향력, 혹은 폐해가 커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올해 굵직한 선거를 앞둔 아시아 국가들도 가짜뉴스에 비상이 걸렸다. 유권자 수만 약 9억명. 세계 최대 민주주의 축제로 불리는 인도 총선은 11일 선거 개시가 임박하면서 가짜뉴스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비디오게임 영상이 파키스탄을 공습하는 인도군 전투기로 둔갑하는가 하면, 지난 2월 파키스탄과 공중전 후 포로로 잡혔다가 귀환해 국민 영웅이 된 인도 공군 조종사의 아버지가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에 입당했다는 가짜뉴스가 돌았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특히 인도 인구 3억명이 이용하는 국민 메신저, 왓츠앱이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정당들마저 왓츠앱을 선전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인도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에서 데이터 컨설턴트로 일했던 시밤 산카르 싱 미시간대학교 연구원은 인도 정당들이 계급, 소득수준, 종교를 기준으로 수십만 개의 왓츠앱 그룹을 관리하면서 각 그룹의 구미에 맞는 정치적 메시지를 배포한다고 말했다.
인도인 중 52%가 왓츠앱을 통해 뉴스를 얻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왓츠앱을 많이 사용하는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오는 17일 대선과 총선을 같이 치르는 인도네시아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가디언에 따르면 한 여론조사에서 인도네시아 소셜미디어 이용자 중 절반은 매일 온라인에서 가짜뉴스에 노출된다고 답했다. 야당과 여당이 서로 가짜 계정으로 댓글 부대를 운영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미 도장이 찍힌 수백만 개 투표용지가 자카르타의 한 항구에 보관되어 있다는 가짜뉴스는 선거 자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로스 터셀 호주국립대 교수는 가디언을 통해, 온라인에서 인위적으로 증폭된 정치적 갈등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지만 큰 위협을 제기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담론은 우리에게 사회 양극화가 실제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면서 “정치인들은 이것을 장려한다. 그러나 결국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가짜뉴스 근절 위해 분주한 움직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아시아의 경우 소셜미디어가 뉴스를 접하는 주요 채널로 자리 잡으면서 가짜뉴스에 무척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많은 이들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 채 정보의 홍수에 곧바로 노출되고 있는 데다 인종, 종교, 민족 간 갈등 속에서 가짜뉴스를 악용하려는 세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짜뉴스로 인한 갈등과 폭력 사태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미얀마에서는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공격과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데, 미얀마 군부가 가짜뉴스를 이용해 로힝야족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스리랑카에서도 지난해 한 무슬림 식당이 불임약을 넣은 음식을 제공한다는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불교계 싱할라족이 해당 식당을 파손하고 인근 무슬림 사원에 불을 지른 일이 발생했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7월 행인 5명이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인근을 지나다가 아동 유괴범으로 의심받아 주민 40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은 마을에 유괴범이 돌아다닌다는 왓츠앱 루머를 믿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아시아 각국은 가짜뉴스로 인한 폐해를 막고자 단속과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정보통신부 산하에 가짜뉴스를 감시하는 작전팀을 신설, 70명의 엔지니어가 24시간 온라인 가짜뉴스를 단속하고 있다. 또 이슬람 극단주의가 퍼뜨리는 선전활동을 차단하기 위한 사이버 대응 전담기구를 만들어, 일부 극단주의 조직원을 체포하기도 했다.
대만은 중국발 가짜뉴스 차단에 나섰다. 대만은 중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대만 통일지방선거를 겨냥해 대량의 가짜뉴스를 퍼뜨려 집권 민진당의 참패를 이끌었다고 의심한다. 지난주 대만 정부가 중국 기업의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금지 계획을 발표한 배경이다. 대만 국가방송통신위원회(NCC) 위원장은 가짜뉴스 차단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지난 2일 사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벌금의 나라 싱가포르가 엄격한 가짜뉴스 금지법을 추진해 눈길을 끌었다. 싱가포르 정부가 지난 1일 의회에 제출한 법안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가짜뉴스나 허위사실을 유포해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10년 이하 징역이나 100만 싱가포르달러(약 8억4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공공 안녕, 싱가포르와 외국의 우호 관계, 정부 업무수행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해를 끼치는 내용을 퍼뜨리면 처벌 대상이 된다. 또 가짜뉴스 플랫폼이 되는 소셜미디어 기업은 정부가 허위로 판단한 게시물을 내리고 내용을 바로잡아 게시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이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가짜뉴스 억제법이 될 것이라고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강한 단속이 결국엔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고 권력에 대한 비판 세력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공공 안녕과 시민의 자유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이다.
실제 말레이시아의 가짜뉴스 처벌법은 싱가포르보다 1년 먼저 제정됐으나 4개월 만에 휴지통으로 가는 신세가 됐다. 가짜뉴스를 작성하거나 유포한 사람을 6년 이하 징역 또는 50만 링깃(약 1억4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골자였다. 지난해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제정된 이 법은 나집 라작 전 총리가 가짜뉴스 유포 혐의로 정적을 탄압하는 근거로 쓰였다. 이후 총선에서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가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 지난해 8월 말레이시아 의회는 이 법을 폐지키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오피니언을 통해 가짜뉴스 단속이나 처벌은 가짜뉴스 못지않게 악용될 여지가 많다면서, 그보다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독자가 정보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가짜뉴스를 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해 학교, 언론, 소셜미디어 기업과 협력을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정보 파악 능력)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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