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 제155호 ‘울진 성류굴’에서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각석 명문 30여 개를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울진군 관계자들이 지난달 21일 성류굴 내부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해 주굴 길이 470m의 성류굴에 들어갔다 입구에서 230여m 안쪽에서 여러 개의 종유석(석주, 석순)과 암벽 등에 새겨진 명문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동굴 안에서 명문이 발견된 사례는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종유석 등에는 ‘정원 14년’이라고 새겨진 명문 3개를 포함해 구체적인 시기를 알 수 있는 명문 여러 개와 ‘임랑’, ‘소’ 등 다수의 화랑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명문이 발견된 곳은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돼 있는 곳이다.
‘신유년’명과 ‘경진년’과 같은 간지 연대 명문은 국보 제147호 ‘울산 천전리 각석’에 새겨진 ‘을사년(서기 525년, 신라)’명과 비슷한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서기 798년에 새긴 ‘정원 14년(원성왕 14년, 통일신라)’ 명과 조선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명 등도 발견돼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그 이후 조선 시대까지 여러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오가며 글자들을 새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은 석주, 석순, 암벽 등에 오목새김돼 있었고, 글자 크기는 다양한 가운데 대부분 해서체(자형이 똑바른 한자 서체)로 쓰였으나, 행서(약간 흘려 쓴 한자 서체)도 일부 가미돼 있었다.
글자들은 정확한 방문 시기와 방문자가 표시돼 ‘정원십사년 무인팔월이십오일 범렴행(정원 14년 8월 25일 범렴이 왔다 간다)’ 등에서 보이는 ‘정원 14년’은 중국 당나라 9대 황제 덕종의 연호가 정원(785~805)인 점으로 보아 동굴 방문 시기는 서기 798년, 신라 원성왕 14년인 것으로 보인다. 화랑 이름인 ‘공랑’, 승려 이름 ‘범렴’ 등 방문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이곳이 화랑들이나 승려 등이 찾아오는 유명한 명승지로 수련장소로도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글자는 서기 524년 세워진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서 나타나는 해서체(자형이 똑바른 한자 서체)와 동일한 서체를 보이고, 성류굴에서 발견한 것 중에는 모래시계 모양의 다섯 오자도 3개 발견돼 서예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고려 말 이곡(1298~1351)의 ‘동유기’(1349)에 처음 나오는 ‘장천’이라는 용어를 그동안은 ‘긴 하천’으로 해석해 왔었지만, 이번에 성류굴에서 ‘장천’명이 발견되면서, 울진에 있는 하천인 ‘왕피천’의 옛 이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문화재청은 밝히기도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국 고대사 자료가 희소한 상황에서 이번에 확인된 다양하고 수많은 명문들은 신라의 화랑제도와 신라 정치‧사회사 연구 등을 위한 중요한 사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각석 명문에 대한 실측과 탁본, 기록화 작업 등 전반적인 학술조사와 함께, 동굴 내 다른 각석 명문에 대한 연차별 정밀 학술 조사와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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