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신(新)남방정책 등 통상전략을 내세우며 국내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전략에는 무역 정책만 있을 뿐 특허 선점 전략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 장치 없이 국내기업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해외에서 특허분쟁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다.
15일 특허청이 국내 기업과 대학·공공연구소 등 주요 출원인의 2011∼2015년 국내 특허 신규출원 77만9005건의 해외 특허 확보현황을 조사한 결과, 국내 출원인들의 특허 출원 중 11.7%만 외국에 출원되고 나머지 88.3%는 해외 특허를 포기했다. 국내보다 해외 특허출원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출원 주체별로 보면 대기업의 해외출원율은 36.8%지만 연구기관은 12.3%, 대학은 4.5%, 중소기업은 4.3%에 불과했다.
최근 기능성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등의 특허출원이 활발한 식료·직접소비재 분야는 국내출원의 1.6%만 외국에 출원되고 있어 해외 현지에서 우리 기업 특허제품의 침해제품이 출시돼도 대응이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은 미국 시장에서만 수출 1억 달러당 51.7건의 특허를 출원해 63.7건을 출원한 일본과 비교가 가능했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서는 7.3건으로 24.3건을 출원한 일본의 30%에 불과했다.
인도와 아세안 등 신남방 시장에서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인도 시장에서 특허출원은 미국과 일본이 각각 40.1건, 50.7건인 반면 한국은 일본의 20% 수준인 11.1건 출원에 그쳤다. 아세안 시장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각각 11.9건, 10.5건인데 반해 한국은 일본의 19%에 불과한 2.0건에 그쳤다.
또 제3의 수출시장인 베트남과 필리핀에서만 중국보다 앞설 뿐 태국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주요 아세안 국가에서는 중국보다 특허출원이 적어 향후 본격화할 신남방 시장에서의 기술경쟁 전망을 어둡게 했다.
해외출원의 미국 편중 현상은 주요 수출 경쟁국 중 우리나라가 52.9%로 가장 심했다. 이어 중국 51.7%, 일본 43.3%, 독일 30.7% 순이다.
반면 인도, 베트남 등 7개 주요 신흥국에 대한 해외출원 비중은 우리나라가 5.6%로 가장 낮고, 미국은 16.6%로 주요 수출 경쟁국 중 가장 높았다.
특허청은 이번 조사를 계기로 오는 6월까지 해외 특허 경쟁력 강화 종합계획을 마련키로 했다. 그동안 특허청은 글로벌IP스타기업과 스타트업 특허바우처, 모태펀드 투자, 특허공제 사업 등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해외특허 지원사업을 추진해 왔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저가제품을 수출하며 성장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혁신성장을 위해 세계 수준의 특허기술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수출해야 한다"며 "우리 중소기업이 특허 없이 제품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특허로 보호받으며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지원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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