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도연, ‘생일’을 기억하다…“감당할 자신 없었지만, 놓을 수 없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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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9-04-2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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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했다. 전 국민을 슬픔에 빠트렸던 ‘세월호’라는 거대한 아픔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두 번이나 출연을 고사했다.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에 외면하고자 시나리오를 덮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궁금함에 다시 몇 번이고 펼쳤다. 배우 전도연(45)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꾸만 들여다보고 듣고 있었다.

영화 '생일'에서 순남 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사진=NEW 제공]


운명이었던 걸까. 캐스팅 1순위였다던 전도연이 출연을 고사하자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 순남 캐릭터는 갈피를 못 잡고 돌고 돌다가 결국 다시 전도연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랜 고민과 갈등 끝에 ‘다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이들’의 모습에 응답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영화 ‘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전 국민들 슬픔에 빠트렸던 그날 아들을 잃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겨진 이들이 서로가 간직한 기억을 나누며 상처를 회복해나가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더욱 그 의미를 더한다.

“이종언 감독님은 영화 ‘밀양’ 때 처음 만났어요. 당시 감독님은 연출부에 있었죠. ‘밀양’ 때도 아이를 잃은 엄마 역을 맡았는데, ‘생일’도 아이를 잃은 엄마라니···. 감당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못하겠어요’라고 했지만, 형식적이었다고 할까요? 마음에서는 차마 이 작품을 못 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작품을 놓지 못했고 작품과 감독님을 믿었죠.”
 

영화 '생일'에서 순남 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사진=NEW 제공]


이종언 감독은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을 찾아 유가족 곁에서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해왔다. 아이들의 ‘생일파티’도 이러한 경험에서 나왔다고. 직접 유가족들을 만나고 진심을 나눈 이종언 감독이 앞장 서 있었기 때문에 전도연은 안심하고 뒤따를 수 있었다.

“감독님은 제가 느끼는 순남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다고 하셨어요. 시작 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는 망설이거나 갈등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순남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관해서만 고민했죠.”

전도연은 매 순간 순남의 감정이 진심이길 바랐다. 장면, 장면마다 이 감정이 순남으로 느끼는 감정인지, 전도연이 느끼는 감정인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한발자국 물러나 객관적으로 순남을 바라보고 싶었고, 그럴 때면 언제나 이종언 감독에게 묻고 조언을 구했다.

“촬영 중간 편집본을 보는데 ‘순남이 유령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떠도는 느낌이 든다고요. 제가 시나리오에서 느낀 순남의 인상만큼은 충실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항상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전도연은 영화 ‘생일’과 ‘순남’이라는 인물에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길 바랐다.

“작품을 찍으면서 유가족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무섭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서 만나지 않기로 했어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가 생각하는 우려에 관해 저 역시도 깊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연기로 인해서 없던 오해도 생기고 오해도 깊어질까 봐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잖아요.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검열하고 있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감독님이 유가족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열심히 쓴 ‘생일’이라는 시나리오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표현하는 일이었어요.”

영화 '생일'에서 순남 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사진=NEW 제공]


전도연은 영화가 다 만들어진 뒤에야 유가족과 마주했다. ‘생일’ 유가족 시사회에서였다. 영화 상영을 마친 뒤 무대 인사에서 유가족과 대면한 그는 ‘그들 앞에 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우두커니 무대 뒤에 서 있었다고 털어놨다.

“다들 울고 계시더라고요. 그 울음소리며 분위기가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나갈 수가 없었어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그분들께 어떤 말을,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지···. 두려운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손으로 직접 만든 지갑을 건네주시는 거예요. 어머님들이 수를 놓고, 노란 리본을 엮어 만들어주신 거였어요. 정말 감사하고 죄송하더라고요. 제가 어렵다고, 무섭다고 피하려고 했던 마음이요.”

어렵게 말을 꺼낸 전도연이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서둘러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는 모습에서 그의 마음이, 진심이 느껴졌다. “세월호 유가족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눈물로 꺼낸 그의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많은 힘이 됐어요.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니 출연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영화를 다 찍고 팽목항에도 다녀왔는데, 그곳에 매어 놓은 리본들이 빛바래져 있더라고요. 씁쓸한 생각이 들었어요. ‘기억하자’고 하지만 우리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오래 고민하고 걱정하고 두려웠지만, 팽목항에 가서 보니 오히려 ‘생일’을 찍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고요.”

영화 '생일'에서 순남 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사진=NEW 제공]


영화를 시작하기 전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돌아 본 영화 ‘생일’을 정의해달라는 말에 전도연은 마음을 추스르며 곰곰이 ‘생일’을 톺아보았다.

“글쎄요. 시작 전에는 ‘생일’이 가까이 가기 어렵고, 무섭고,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끝나고 나니 가까이 다가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막연하게 조심스럽고 어렵게만 느껴졌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보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작보고회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기자분들도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어렵게 말을 꺼내는 걸 보면서 ‘아, 이 이야기를 우리만 어렵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이걸 어떻게 말하고 풀어가고 써 가느냐의 문제구나’를 알게 됐어요. 그 점이 힘이 됐고요.”

2014년 4월 16일.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은 슬픔에 잠겨있다. 전도연은 영화 ‘생일’이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했으면 좋겠다며 “달라지거나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무거운 돌덩이는 내려놓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 사건이 있고 모든 국민이 무기력함을 느꼈을 거 같아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그래도 ‘생일’을 찍고 가슴 속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은 마음은 들어요. 바로 서고, 대면했을 때 오히려 위로받고 힘이 되더라고요. 관객들 역시 저와 같은 느낌을 느끼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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