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모습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지난해 11월 최경주(49)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던진 말이다.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다. 그해 8월 갑상선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운이 좋았다. 몸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해 곧바로 수술을 받은 뒤 건강한 몸을 되찾았다. 당시 최경주는 “투어 25년을 뛰면서 한 번도 쉰 적이 없더라. 내 몸이 ‘나 좀 쉬고 싶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최경주가 혹독하게 채찍질했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휴식을 준 해다. “미국에서 스트레스가 많았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오직 골프에만 집중을 한 인생이었다. 챔피언스 투어로 가기 전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집에서 아이들과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온전히 쉬지 못했다. 새로운 트레이너와 함께 아침, 저녁으로 체계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체중 조절에 성공해 10㎏이나 감량한 전성기 시절 몸무게를 만들었다. 그는 “내년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짠’하고 나타나겠다”고 강조했다.
최경주가 녹슬지 않은 ‘탱크’로 돌아왔다. 최경주는 22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헤드의 하버타운 골프링크스(파71)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RBC 헤리티지에서 최종합계 7언더파 277타로 공동 10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최경주는 마지막 날 한때 공동 선두까지 오르는 등 우승 경쟁을 벌였다. 마지막 두 홀에서 벙커에 빠져 연속 보기를 적어낸 것이 뼈아팠다.
하지만 충분히 뛰어난 성적이다. 최경주가 PGA 투어 대회에서 ‘톱10’ 안에 든 것은 올 시즌 처음이자, 지난해 3월 코랄레스 푼타카나 챔피언십 공동 5위 이후 1년 1개월 만이다. 오랜만에 오른 ‘톱10’이지만, 지난해 성적과는 값어치가 달랐다.
코랄레스 푼타카나 챔피언십은 같은 기간 열린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매치 플레이에 나가지 못한 중하위권 선수가 주로 출전한 B급 대회였다. 하지만 RBC 헤리티지는 세계랭킹 1위 더스틴 존슨(미국)을 비롯해 10위 이내 선수들이 5명이나 출전한 대회였다. 이번에는 정상급 선수들과 당당히 선두권에서 우승 경쟁을 펼친 끝에 받아낸 성적표였다.
최경주는 이날 발표된 남자골프 세계랭킹에서도 지난주 846위에서 무려 335계단이 오른 511위로 도약했다. 2008년 3월 세계 5위까지 올랐던 최경주가 꾸준히 성적을 거두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릴 수 있다.
최경주는 한국인 PGA 투어 1호 챔피언이다. 미국 무대에서만 20년을 넘게 뛰며 통산 8승을 거둔 베테랑이자, 아직도 현역에서 뛰고 있는 한국 남자골프의 든든한 ‘맏형’이다. 최경주는 2011년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끝으로 투어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현역 시계는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 올 시즌 초반 성적은 컷 탈락만 세 차례 당하는 등 신통치 못했다. 지난 8일 끝난 텍사스 오픈에서 공동 69위로 처음 4라운드를 완주한 최경주는 곧바로 이번 대회에서 톱10에 들었다. 자신의 몸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탔다.
최경주는 오는 26일 열리는 취리히 클래식에서 통산 9승에 도전한다. 이 대회는 2인 1조로 경기를 치르는 방식으로 최경주는 2015년 메모리얼 토너먼트 챔피언 다비드 링메르트(스웨덴)와 호흡을 맞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거짓말처럼 그린재킷을 입었듯, 씩씩하게 부활을 알린 최경주의 깜짝 우승도 바라볼 수 있는 계절이다.
최경주는 투어 활동을 하면서 올해 미국팀과의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에 세계연합팀 부단장에 선임됐고,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 남자골프 감독을 맡는다. 쉴 틈 없는 ‘불도저식 탱크’ 인생이다. 또 골프 꿈나무들을 위해 최경주재단을 통해 꾸준히 후원의 손길을 뻗고 있다.
최경주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하나다. “18홀 중에 위기는 두 차례 찾아온다. 장갑을 벗기 전에 절대 포기하지 마라.” 지난해 아픔을 겪은 최경주가 아이들 앞에서 몸소 실천하기 위해 올해 새로 태어난 셈이다. 최경주는 “2020년에는 PGA 챔피언스(시니어) 투어와 PGA 투어를 병행하는 신선한 모습도 보여주겠다”고 당당히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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