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된 말로 정치인은 말로 밥을 빌어먹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말은 유효한 무기다. 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드러내고 상대를 설득한다. 정제된 언어와 품격은 필수 조건이다. 격을 잃어버릴 때 말도 힘을 잃는다. 한국 정치판이 참으로 각박하다. 5,18망언과 세월호 막말로 소란스럽다. 말이 아니라 흉기가 난무하는 막장 정치다. 정치인에게 품격 있는 정치 언어를 기대하는 게 무리한 일일까. 배설에 가까운 망언과 막말은 ‘보수의 품격’과도 거리가 멀다. 진짜 보수라면 품위를 지킨다. 막말 소동을 일으킨 이들은 사이비 보수다. 5.18과 세월호는 현재 진행형이다.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고통 속에 있다.
그런데 망언과 막말이 춤을 춘다. 사과와 속죄는커녕 책임 회피 수단으로 삼는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난하는 언어도단이다.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이다(이종명 한국당 의원).” “5.18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이 세금을 축내고 있다(김순례 한국당 최고위원).”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처먹고, 찜 쩌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 하게 해 처먹는다(차명진 한국당 지역위원장).”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어라. 징글징글하다(정진석 한국당 의원).” 정신 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더 아파야 망언과 막말을 멈출까. 그들에게 인간애를 기대하는 건 사치일까. 도대체 왜 그럴까. 생각은 꼬리를 문다.
세월호는 집단 트라우마를 남겼다. 온 국민이 세월호 좌초부터 침몰까지 생생하게 지켜봤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생때같은 자식들이 저 안에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살려달라는 외침을 뒤로한 무력감은 두고두고 집단 상처가 됐다. 세월호 부모들은 자식을 가슴에 묻었다. 몰지각한 욕지거리도 참았다. 폭염 아래 단식할 때 폭식하며 조롱하는 비인간적인 행동도 견뎠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왜 구하지 않았을까. 못 구한 걸까. 아직 속 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했는데 막말로 상처를 후비니 아연하다.
광해군 당시 허난설헌은 이름난 여류시인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던 시절, 자기 이름을 지녔고 빼어난 시를 지었다. 아버지 허엽, 오빠 허성과 허봉, 그리고 남동생 허균과 함께 조선 5대 시성(詩聖)으로 이름났다. 그런 그에게도 자식 잃은 슬픔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자식을 잃고 운다는 ‘곡자(哭子)’라는 시를 남겼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다/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두 무덤 마주보고 나란히 서 있구나/ 백양나무 숲 쓸쓸한 바람/ 도깨비 불빛은 숲속에서 번쩍이는데/ 지전(紙錢)을 뿌려 너의 혼을 부르고/ 너희들 무덤에 술 부어 제를 지낸다/ -중략- 하염없이 황대의 노래 부르며/ 통곡과 피눈물을 울며 삼킨다/”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은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체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슬픔을 가르친다. 2004년 12월 30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나이트클럽에서 큰 불이 났다. 결과는 참혹했다. 무려 200여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참사 5주기, 정치권에서는 언제까지 추모해야 하느냐며 회의론을 지폈다. 당시 프란체스코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울어주지 못했다. 이 도시는 더 울어야 한다.” 고통과 슬픔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끊임없이 기억하고 위로하는 게 인간된 도리다.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위로했다. 노란색 리본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말에 교황은 “인간적인 고통 앞에서 정치적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게 슬픔에 대한 도리다.
한국당은 차명진 지역위원장과 정진석 의원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합당한 징계가 뒤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의문이다. 앞선 5.18망언 3인방에 대한 징계도 솜방망이에 그쳤기 때문이다. 품격 있는 보수, 합리적 보수를 지향한다면 읍참마속을 각오해야 한다. 나아가 왜 망언과 막말이 되풀이되는지 근본 원인을 헤아리는 성찰이 필요하다. 궤멸 직전까지 갔던 한국당이다. 인간적인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말을 헤아리며 품격 있는 정치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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