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응우옌(Nguyễn)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응우옌 푸 쫑 서기장 및 국가주석, 응우옌 쑤언 푹 총리, 응우옌 티 킴 응언 국회의장. 베트남 베트남의 권력서열 1위, 4위, 5위의 성씨가 모두 '응우옌'이다. 권력서열 2위와 3위가 부재 중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위부터 3위까지 응우옌이 베트남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응우옌 성씨가 베트남 인구의 39%나 차지하고 있는 탓이다. 응우옌 성씨는 세계적으로도 '리(Li)', '리(LEE)', '장(Zhang)'에 이은 4대 성씨로 꼽힌다. 베트남 이민자들이 많은 호주에서는 응우옌 성씨가 7위에 올라 아시아 계열 성씨 중에서는 독보적인 1위다.
사실 베트남에 살다보면 비슷한 성씨의 베트남인이 많아 혼동이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응우옌 성씨를 제외하고도 '쩐(Trần)'씨 11%, '레(Lê)'씨 9.5%, '팜(Phạm)'씨 7.1%, '후잉·황(Huỳnh·Hoàng)'씨 5.1%, '판(Phan)'씨 4.5% 등 주요 성씨 6개를 쓰는 이가 베트남 전체 인구 중 76.2%에 육박한다. 한국에서도 '김', '이' '박' 등 3대 성씨가 인구 절반을 넘는 점과 매우 유사하다.
이렇게나 일부 성씨에 인구가 집중된 이유를 짚은 여러 가지 설 가운데 가장 유력한 건 역사적인 왕조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중세에서 현대까지 이르렀던 쩐왕조(1225~1400), 레왕조(1428~1788), 응우옌왕조(1802~1945)의 영향으로 세 성씨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응우옌 왕조 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왕조 차원에서 응우옌 성씨를 부여했으며 일부 범죄자들도 체포되지 않기 위해 응우옌으로 성씨를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후기 응우옌 왕조가 마지막 왕조가 되면서 더 이상 성씨를 바꿀 필요가 없게 되자 베트남 전역에 응우옌 성씨가 넘쳐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베트남에서는 서로 같은 성씨가 너무 많은 점을 감안해 성씨 대신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쫑 서기장으로,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푹 총리로 부르는 식이다.
응우옌 성씨가 많다보니 이름이 같은 남녀가 한 장소에 있을 경우 가운데 이름까지 넣어서 구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응우옌 빈이라는 남성과 응우옌 빈이라는 여성이 함께 있다면 중간이름을 합해 여성은 '티 빈' 남성은 '반 빈'으로 부른다. 성과 이름까지 흔한 경우에는 아예 중간 이름만을 부르기도 한다. 예컨대 팜 투이 짱(Pham Thuy Thang)인 경우 성씨와 이름이 모두 흔하기 때문에 투이(thuy)라는 중간이름을 부르는 식이다.
만약 베트남인을 처음 만난다면 성씨 대신 이름부터 불러보는 센스를 발휘해보자. 먼저 이름을 부르는 감각에서 그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