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역사관으로 가는 골목은 원단과 옷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바삐 오갔다. 드르륵 드르륵 빠르게 돌아가는 봉제소리와 스팀다리미가 뿜어내는 하얀 김으로도 가득했다. 지금의 화려한 동대문 패션타운은 이러한 창신동 봉제골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62년 평화시장이 들어서며 동대문 일대는 의류 생산과 판매 집적지로 특화됐다. 이후 열악한 노동환경에 반발한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1970년대 동대문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들이 창신동으로 이전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창신동에는 크고 작은 봉제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한때 3000곳이 넘던 봉제공장은 현재 1000곳으로 줄었지만 소규모 공장들이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며 전국에서 가장 높은 봉제공장 밀집도를 자랑한다.
창신동 거리는 그 자체가 봉제의 역사이자 현실이고 또 미래다. 이러한 골목에 자리 잡은 봉제역사관이 개관 1주년을 맞아 지난달 30일 기념행사를 열었다.
◆봉제인이 가장 돋보이는 공간 '봉제역사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의류 봉제업의 역사와 가치를 다양한 전시와 체험으로 느껴볼 수 있는 역사문화공간이다. ‘이음피움’이라는 이름은 봉제가 실과 바늘로 천을 이어서 옷을 탄생시키듯 서로를 이어(이음), 꽃이 피어나듯 소통과 공감이 피어난다(피움)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개관 1주년을 맞아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봉제 장인들의 작업실을 재현한 기획전시 ‘서울의 명품봉제전’을 오픈했다. ‘서울의 명품봉제전’은 ‘대한민국 명품봉제 페스티벌’에서 우수상을 받은 봉제 장인과 패턴기술자, 청년 디자이너로 이루어진 팀의 작업장 모습과 제품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명품봉제 페스티벌'은 옷 한 벌을 완성하기 위해선 디자이너와 봉제인의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대다수 패션페스티벌은 디자이너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대한민국 명품 봉제 페스티벌’은 디자이너와 봉제사가 한 팀을 이뤄야 참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2층에는 창신동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봉제역사관이 있다. 봉제역사관에는 1901년부터 현재까지의 창신동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빼곡하다. 봉제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설 전시관으로, 봉제역사관의 설립 배경과 함께 도심제조업의 중심인 창신동의 이야기까지 모두 담고 있다.
또 단추가게에는 창신동 봉제인들이 직접 생산한 봉제 제품, 형형 색깔의 단추들, 다양한 봉제 도구들을 구매할 수 있다. 방문객들은 마음에 드는 단추를 선택해서 청재킷 등에 달 수 있다.
봉제역사관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나만의 종이의상 만들기, 애착인형 만들기, 컴퓨터 무료 자수 새기기, 단추달기 등을 즐길 수 있다. 또 컴퓨터 자수기, 열전사 프레스기 같은 특수 의상 제작 장비도 체험할 수 있다. 기념품 숍에서 상품을 산 뒤 컴퓨터 자수기를 이용해 본인의 이름을 새길 수 있고 열전사 스티커도 붙일 수 있다.
무엇보다 방문객 중 옷을 만드는 과정을 간접 체험하기 위해 방문한 진로체험 학생들이 많다는 점에 비춰, 봉제역사관은 봉제산업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단기 체험 프로그램인 ‘옷 만들기’에서는 봉제작업실 장비를 활용해 패턴, 재단, 재봉 과정을 전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코트, 원피스 등 여성복뿐만 아니라 아기옷 등도 만들 수 있다.
한 원장은 “봉제기술자는 떳떳하게 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데, 사양산업으로 분류되다 보니 청년들이 유입되지 않아 기술을 전수할 수 없어 단절될 위기”라고 우려했다. 또 "최근 들어 창신동에서 봉제 일거리가 대폭 줄었다. 중국산을 메이드인코리아로 바꾸는 ‘원산지 라벨갈이’로 인한 타격이 크다"며 ”역사관이 봉제산업의 대변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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