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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오지원 사무처장'
하지만 매일 그렇게 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마트에서 우연히 가습기 살균제를 발견했다. 가습기 관리에 지친 나에게 한 줄기 희망처럼 다가왔다. 당장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했고 안심했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어느날부터 아이가 기침을 심하게 했다.
병원에 갔더니 원인불명 폐렴이라면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의학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원인불명 폐렴이란 것이 있을 수 있나 의아했지만, 요즘 이런 환자들이 많다는 의사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혈관을 찾아 이마에 수액을 맞느라 편하게 누워있지도 못하는 두 살배기 아이는 낯선 입원실에서 많이도 울고 보챘다.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집 대신 병원으로 퇴근해서 아이를 돌보느라 진을 뺐다.
그 때만 해도 몰랐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오히려 병원을 찾았다가 병원에서 사용하는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사망한 아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가습기살균제에 함유된 화학물질이 사실은 화장실 바닥 등을 청소하는데 사용되는 물질이고 흡입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그런 물질을 넣고 제품을 만드는데 정부는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에서 위험을 안고 산다. 자동차나 비행기의 원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안전하다고 믿고 그것을 이용한다. 온갖 제품들의 제조과정이나 함유물질을 모르지만 안전하다고 신뢰하고 사용한다.
위험이 일상인 사회에서 안전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사회는 존속하지 못한다. 거래는 불가능하고 우리의 삶도 불가능하다. 그 신뢰가 처참하게 깨져버린 참사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내 안방에서 내 손으로 선택한 제품에 의해 가족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점에서 피해자들과 그 가정에 더 큰 상처를 남겼다.
이러한 사회적 참사에 있어 국가 대응의 목표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최소화 하고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데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나마 신속한 구제와 지원, 원인규명을 통해 저감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국민들은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대응은 이미 실패의 연속이다. 2011년 8월에 원인미상 폐손상의 위험요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점이 밝혀졌는데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은 2017년 2월이었고, 그 법에 따른 피해인정자는 2019년 현재 아직도 전체 신청자의 12% 남짓에 불과하다.
피해자들은 2014년에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한 업체들을 형사 고소했으나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옥시 관계자들 일부가 2016년에 구속 기소되고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SK 케미컬, 애경 등 기업들에 대한 수사는 2019년에 들어서야 제대로 진행 중이다.
"피해구제와 지원, 원인규명 모두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이러한 지연은 참사 이상의 참사라 할 만하다. 무엇이 '신속한 구제와 원인규명'을 막아왔을까. 그 원인을 찾아서 지금부터라도 신속한 구제와 원인규명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다시는 이러한 참사와 참사를 더한 참사로 만드는 지연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와 활동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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