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철밥통’ 옹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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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9-05-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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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차산업혁명 시대, ‘사회혁신’도 중요

  • 소득 불평등 방치한 채 혁신경제를 외치는 것은 ‘연목구어'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




“국가직이 아니면 불을 못 끄나?” 동해안 산불 진압을 위해 전국에서 출동한 소방관들의 국가직화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다시 거론되자 한 제1야당 국회의원이 한 폭언이다. 대통령 스스로 소방관들 앞에서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헌신에 감동한 국민들의 암묵적 합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가직화에 대해 예산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자신들의 봉급은 물론 연금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이를 데 없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에 대해서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사실 국회의원들의 이기심은 스스로 제정한 헌법의 보장을 받고 있다. 이들은 헌법 제44조 1항에 의해서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그래서 ‘방탄국회’가 열리게 되고 회기 중에 체포동의안이 제출될지라도 지난해 5월 홍문종·염동열 의원 사례처럼 부결되거나 회기 종료로 폐기되면서 여야를 넘나드는 ‘제 식구 감싸기’가 반복되곤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과는 달리 국회의원은 유권자에 의한 소환이 불가능한 유일한 선출직이다. 2017년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활동할 당시 민간자문위원들이 제출한 개헌안에서는 국회의원 소환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정작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는 이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원은 청탁금지법의 적용대상도 아니다.

생활의 안정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특히 경제적 안정은 다른 모든 생활의 안정을 위한 기본전제이다. 재벌들이 온갖 변칙과 편법, 불법으로 2, 3세 ‘경영권 승계’에 총력을 기울이는 노력의 출발점도 사실 풍요로운 생활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물려주려는 본능의 표출이다. 국민을 ‘개돼지’로 욕했다가 징계당한 교육부 고위공직자가 같은 자리에서 주장한 “신분제 강화”는 자신의 안정적인 공무원 지위를 후손에게 대물림하고 싶어 하는 봉건적 향수였다.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스카이 캐슬’에서 현실감 있게 묘사된 부유층의 행태 또한 재산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도 대물림하려는 노력이다.

대한민국 청년의 취업 1순위가 공무원과 공공기관 정규직에 몰리는 현상은 ‘해고의 자유’를 확대하고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려는 사용자에 맞서 안정을 지향하는 본능의 발로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철밥통’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경제적 안정을 달성하려는 노동자들의 안간힘이다. 노후보장이 취약하니 기업의 경쟁력과 상관없이 ‘벌 수 있을 때 벌기 위해서’ 임금인상 요구와 파업을 정례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안정의 보장이 개인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최근 선진국에서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논의의 한 줄기에는 ‘안정이 혁신’이라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혁신과 노동혁신뿐만 아니라 ‘사회혁신’의 중요성도 부각되면서 대표적 복지국가인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의 혁신 잠재력이 가장 높게 평가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 크레인을 1달러에 팔아 화제가 된 코컴스(Kockums)조선소가 있던 스웨덴 말뫼(Malmö)시가 20년 만에 에코시티로 변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자체, 노조, 시민단체, 기업 등 모든 당사자의 혁신이었다.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개인이 스스로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설계할 수 있으려면 인간다운 생활이 자신의 경제활동에만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도 점차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그 일부이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최저임금 관련 허위보고서나 52시간도 짧다는 듯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는 퇴행적 행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 ‘저임금을 활용한 대박’이라는 환상을 좇다가 17억 달러의 부채를 떠안은 채 몰락한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가 한국경제의 미래일 수 있다. 저임금은 저생산성과 저품질을 낳을 뿐이다. 혁신에 기초한 생산성 경쟁, 품질경쟁으로 전환하지 않는 기업들을 앞에 두고 비서실장이 나서서 대통령이 ‘친기업적’이라고 자랑하는 나라의 미래는 더더욱 없다.

안정은 자체가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불평등하게 배분되었을 때 비효율적이다. 안정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방치한 채 혁신경제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연목구어’이다. 금년 2분기 불평등지수가 발표되면 홍남기 부총리가 “죄송하다”는 반응 말고 어떤 대책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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