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훈의 중소기업 다녀요] “백년가게로 선정한 중기부가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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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훈 기자
입력 2019-05-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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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 계약 만료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을지OB베어. 간판에 검은색 근조리본이 달려 있다.[사진=신보훈 기자]

"이전부터 단골손님들이 와서 간단히 노가리와 맥주를 즐기던 공간이었습니다. 크게 돈 벌 생각 없어서 가게 확장도 안 했고요. 우리끼리 장사 잘 하고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노가리 골목으로 지정하고, 중기부에서 백년가게로 선정한 뒤에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금은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강효신 을지OB베어 사장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40년 전통의 ‘노맥집’ 을지OB베어가 임대인과의 분쟁으로 폐업 위기에 처했다. 을지OB베어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을지OB베어는 아버지 강효근 사장의 가게를 강효신 사장이 물려받아 1000원짜리 노가리를 판매하고 있다. 40년 간 별다른 분쟁 없이 가게를 운영해 왔지만, 지난해 말 건물주가 공간을 비워달라고 통보하면서 폐점 위기에 놓였다. 강 사장은 임대료를 기존보다 2배까지 올려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건물주는 이를 거절했다.

을지OB베어는 1980년대 형성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원조 가게다. 을지OB베어 이후 주변에 노맥집이 하나둘 들어섰고, 주변 인쇄소와 철물점 직원들의 휴식처가 되면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서울시는 2015년 노가리 골목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말 소상공인의 롤모델 발굴을 위한 백년가게로 을지OB베어를 선정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대대적으로 홍보한 노가리 골목은 소상공인과 인근 지역 주민들이 소소하게 조성한 공간에 유명세를 더했고, 을지로 주변 재개발 사업과 맞물려 결과적으로 원주민을 쫓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를 만들어 냈다.
 

을지OB베어는 서울시와 중기부가 인증한 대표적인 노포다. 1000원 노가리와 40년 전통으로 많은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임대인과의 문제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사진=신보훈 기자]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차인들은 계약 갱신요구권을 10년까지 주장할 수 있지만, 을지OB베어 같은 노포(老鋪)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현재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승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기부 관계자는 “백년가게 선정과 임대인‧임차인간 민사 소송은 별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기관이 따로 나서기는 어렵다”며 “을지OB베어의 경우 법률자문을 요청해 지원해 준 바 있다”고 말했다.

강 사장이 “노가리골목을 지켜달라”며 기자회견을 연 당일 중기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또 다시 35곳의 신규 백년가게를 선정해 발표했다. 을지OB베어는 오는 22일 건물 임대계약 연장을 위한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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