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막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10주기는 무엇인가 말할 수 없이 오열하던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과 이번 10주기 추도식 행사에 참여한 부시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치열했던 2000년대 초반의 한국사회와 정치지도자들을 회상하는 기회로 다가왔다. 김대중, 부시, 그리고 노무현, 이런 순서로 이들은 21세기의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등장하였지만, 세상과 작별하는 순서는 이와 사뭇 다르다.
노무현은 1988년 국회의 5공 청문회에서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15년만에 대통령이 되었고, 퇴임한지 불과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하였다. 나는 풍운아였던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어떻게 규정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다가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것은 한자로 '眞正性'이라고 쓰기도 하고 '眞情性'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그만큼 미묘하고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진정성은 자신의 이상이 쉽게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내면에 있는 철학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끝까지 실현하고자 할 뿐 아니라 자신을 끝없이 성찰하고 완성하려는 삶의 태도이다. ‘바보 노무현’은 이런 특징을 짚어낸 별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성의 기원과 구조를 탐구한 사회학자 김홍중은 “진정성을 추구하는 주체는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공적 의미 지평에서 실현시키고자 사회에 참여하는 존재”라고 정의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진정성이 중요한 규범적 가치로 등장한 것을 ‘5.18 이후’라고 보고 있지만, 그 싹은 1970년대 유신체제하에서 자라났다. 그런 마음가짐은 극단적인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어려움 사이에서 형성되었고, 더 좋은 나라, 더 나은 사회, 그리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자아를 지향한다. 진정성은 1980년대에 좀더 집합적인 규범이 되었고 민주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진정성은 끝없는 자기성찰과 반성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그 종말은 파국적이다. 진정성은 부끄러운 생존과 영광스런 죽음이라는 상반되는 삶의 형식을 전제하며, 자신에게 도덕적 폭력성을 강제하여 때때로 영광스러운 죽음을 자신의 삶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가 목도했던 수많은 ‘분신’은 이런 종말의 결정체들이다. 노무현의 죽음도 진정성의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10주기 추도식이 좀 특별했던 것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조문이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 행사에 참여하도록 했을까? 그는 선임이었던 빌 클린턴 대통령과는 다른 정책을 추구했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엇나가는 스탠스를 취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후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회고하면서 ‘멋진 친구’라고 불렀고, 그 친구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기증하였다. 그는 이를 통해 대통령 재임시의 긴장과 불화에 대해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그는 ‘멋진 전직 대통령’임을 보여주었다.
한국 현대정치를 되돌아보면, 정치지도자의 죽음의 형식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례가 그렇고, 또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가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택한 죽음은 진정성의 정치가 부활하는 에너지를 제공했다. 그의 후계자들은 정치 지도자는 “자기 내면의 믿음에 솔직하고, 언제나 개방적이며, 정직함을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질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친구이자 후계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약간 색깔은 다르지만 ‘운명’처럼 진정성의 정치를 받아들였다. 또 다른 후계자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가짜들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원본' 혹은 '독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진정성을 만들어내는 '작가(author)'라는 타이틀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화해의 철학과 진정성의 철학은 종종 서로를 보완하면서 조화를 이루지만, 서로 어긋나기도 하고, 또 그것이 장기적으로 발휘하는 효과가 다를 수 있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진정성에 화해의 정치철학을 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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