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동방] 대상무형(大象無形).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복귀 후 첫 사장단 회의에서 제시한 올해 화두다. 도덕경에 나오는 이 문구는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는 의미로 신 회장은 다가올 미래가 형태를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같은 표현을 썼다. 급변하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롯데그룹의 시계추는 그 어느 때보다 빨라졌다.
◇강점 : 지주사 전환으로 경영 투명성 확보…유통·화학 '투트랙'으로 사업 안정성
롯데그룹은 지난 2017년 10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게 됐다. 과거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순환출자 고리도 대부분 해소한 데 이어 최근 추진하고 있는 '금융 계열사 매각'도 순항 중이다.
24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롯데카드를 MBK파트너스-우리은행 컨소시엄으로, 롯데손해보험을 JKL파트너스로 매각하는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회사의 지분을 보유할 수 없다. 신 회장이 형제 간 경영권 분쟁, '뇌물공여·경영비리' 법적 공방 등 대내외 악재를 딛고 지난해 경영에 복귀하면서 이 같은 지주회사 전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사업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롯데그룹은 유통과 화학 '투트랙'을 통해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갖췄다는 평이다. 석유화학부문인 롯데케미칼은 호황 때 대규모 이익창출역량을 지닌 반면 업황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높다. 범용제품 위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포트폴리오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적 변동성을 롯데쇼핑 등 유통부문이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약점 : '롯데의 심장' 유통부문 경쟁력 약화…신 회장 '과다 겸직' 논란 지속
다만 기존 롯데그룹의 핵심 축이었던 유통부문의 사업경쟁력이 하향세다. 특히 백화점·대형마트 등이 성장정체에 이른 데다가 경쟁은 더욱 심화되는 탓에 실적이 회복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롯데카드를 매각하고나면 유통과의 시너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신동빈 회장이 '과다 겸직'을 지적받고 있는 점도 문제다. 신 회장은 현재 롯데지주를 비롯해 롯데케미칼·롯데제과·호텔롯데 대표이사, 롯데쇼핑·롯데칠성음료·롯데건설·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사내이사, 에프알엘코리아 기타비상무이사 등 무려 9개 계열사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으로 최근 재벌 총수들이 겸직을 줄이는 추세인 것과 상반된다.
이와 관련 국민연금기금은 "특정 인물이 여러 계열사 이사직을 과도하게 겸임하면 충실한 의무 수행이 어렵다고 본다"며 신 회장의 겸직을 견제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14년 롯데쇼핑 사내이사 선임 △2014년 롯데제과 사내이사 선임 △2015년 롯데케미칼 이사 선임 △2017년 롯데케미칼 이사 선임 △2018년 롯데쇼핑 사내이사 선임 등 안건에서 모두 신 회장 겸임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올해 3월에도 롯데케미칼과 롯데칠성 주주총회에서 반대의견을 냈지만 신 회장은 과반의 우호 지분에 힘입어 재선임을 이뤘다. 그러나 의결권 전문기관에서도 "신 회장 겸임으로 경영진에 대한 적절한 견제 기능이 우려된다"고 지적, 이를 자문받아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관투자가의 반대의견도 높아질 전망이다.
셰일가스 채굴 비용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는 롯데에게 기회요인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 레이크찰스 에틸렌 공장 건설을 완공했다. 셰일가스에서 나오는 에탄을 원료로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기존 원료인 나프타(납사)를 원료로 하는 것보다 원가가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다고 전해진다. 가동이 본격화되면 롯데케미칼의 글로벌 에틸렌 생산 규모는 연간 약 450만t으로 늘어나 세계 7위 수준이 될 전망이다.
셰일가스는 원유와 대체제 성격이다. 고유가 시대 대안으로 등장했던 셰일가스는 지난 2014년 하반기부터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원가경쟁력을 잃었다. 셰일가스 채굴 비용이 비쌌던 탓에 저유가 시대에서는 손해보는 사업이 됐던 것이다. 당시 미국 셰일기업 100여개가 파산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셰일업계는 결국 기술혁명을 통해 채굴 생산단가를 대폭 낮추는 데 성공했다. 롯데케미칼의 미국 루이지애나 공장은 이 같은 셰일가스 경쟁력 상승세에 올라탄 것이다.
이 같은 셰일가스를 이용한 에틸렌 사업에 대해 롯데그룹 내에서 거는 기대도 크다.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BU 사장은 루이지애나 공장 준공식 간담회에서 "2030년까지 화학 분야에서 매출 50조원을 달성해 글로벌 톱7에 들어갈 것"이라며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위협 : 해외 요인에 대한 실적 민감성…신 회장 상고심도 변수
롯데그룹은 해외 변수에 취약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다. 롯데그룹은 지난 2017년 사트 사태로 직격탄을 맞으며 중국 롯데마트 철수를 선언한 바 있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에 짓고 있던 롯데복합단지도 2년째 건설이 중단됐다가 지난달에서야 다시 시공 인허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 등 식품제조산업도 중국에서 철수키로 했다. 이처럼 롯데그룹은 유통업 등 소비자와 접점이 많은 사업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탓에 외교 갈등이나 현지 경제상황 등이 실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 간 거래(B2B)를 영위하는 롯데케미칼도 해외 변수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롯데케미칼은 미국 루이지애나 에틸렌 공장 등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수요 위축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해 공급과잉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이미 올해 1분기 실적에서도 유가상승 및 중국 경기둔화 등으로 영업이익은 2957억원에 그치며 전년동기 대비 55.3% 감소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신동빈 회장이 국정농단 및 경영비리 사건으로 상고심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롯데그룹 측에서는 배제할 수 없는 위협요인이다. 비록 신 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지만 1심 판결에서는 법정구속 판결을 받았던만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롯데그룹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집행유예 확정'부터 최악의 경우 법정구속에 따른 '총수 부재'까지 시나리오별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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