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형식(28)에게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그토록 원했던 '첫' 영화고, 장르적·연기적인 변신을 꾀한 작품이며 대선배들과 호흡을 통한 '앙상블'의 방법도 깨달았다. 거기에 작품과 연기에 관한 호평까지 이어지니 벅차고 긴장될 수밖에.
"처음이다 보니까 지금까지는 흘러가는 대로 눈치껏 왔는데···. 너무 긴장돼요.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설어요.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2010년 아이돌 제국의 아이들로 데뷔해 2012년 SBS 드라마 '널 기억해' '바보 엄마'로 연기에 발을 디딘 10년 차 연예인인데도, 박형식은 마냥 들뜨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꼭 어제 데뷔한 신인 배우처럼 말이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박형식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작업에 관한 기대가 컸다고
- 영화를 엄청 찍고 싶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기회가 없었다. 함께 드라마를 찍었던 선배님들이 영화 환경에 관한 판타지를 심어주셔서 더 기대가 컸던 거 같다.
이를테면?
- '형식아 영화 현장에 가면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 '너의 세상을 펼칠 수 있다'는 식이다. 하하하. 도대체 영화 현장은 어떻길래? 궁금했다. 해보고 나니 그 말이 이해가 가더라. 신 마다 의미를 곱씹고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신마다 정성스럽게 찍는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런 부분에 관해 갈증을 느낀 것 같고
- 공연을 올리기 전에 연습을 하지 않나. 배우들이 모여서 작품을 분석하고 고민하고 호흡을 맞추다 보면 관계도 더 좋아지는데 영화도 같은 느낌을 느꼈던 거 같다.
연기에 있어서도 좋은 영향을 미쳤을 거 같다
- 그랬다. 선배님들이 연기하는 것만 봐도 배울 점이 많았다. '아, 저 장면을 저렇게 연기하시는구나' 깨닫곤 했다. 연기에 다가가는 접근성, 가치관 같은 게 다른 것 같더라.
그간 인터뷰를 통해 청춘, 누아르 장르에 관심이 많다고 했었는데. '배심원들'은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첫 스크린 데뷔작이 '배심원'이 된 이유가 있나?
- 매력적이었다. 작품도 그랬지만 남우 캐릭터도 관심이 갔다. 제 친구 중에도 남우 같은 성격을 가진 친구가 있다. 어떻게 이렇게 현실적으로 보이도록 캐릭터를 만들었는지 신기하더라.
연기적인 부분에서는 어땠나?
- 그간 드라마에서 CEO, 재벌 2세, 왕 같은 캐릭터를 맡아왔다. 소위 말하는 '있는 척' 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남우는 정말 평범하게 살고 있는 27살 학생이지 않나. 오히려 '평범한 게 무엇인가'에 관해 엄청나게 고민했다. 특히 드라마 '슈츠'를 찍다 온 터라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서 힘을 빼야 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저는 평범하다고 연기하는데 감독님은 '더 평범하게!' '힘을 빼고!'라고 하더라.
특히 '슈츠'는 능력 있는 변호사 역이었으니까
-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데 변호사, 검사가 하는 얘기가 대충 무슨 얘긴지 알겠더라. 귀에 막 쏙쏙 들려오는 거다! 속으로 많이 웃었다.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그간 능글거리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면 남우는 담백한 인물이었는데
- 감독님께서 상황 자체가 역동적이고 다양한 색깔을 제시하려면 반대로 남우는 아무 색깔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게 뭔데요?'라고 했지. 스스로에게 남우에 관해 질문하게 만드는 과정이 있었다. 이번 계기로 (연기적) 색깔을 찾은 거 같다.
남우 역에 관해 고민이 많았을 거 같다. 자칫하면 '민폐'라 느껴질 요소들이 많았으니까
- 감독님이 뭘 원하는지 몰랐던 거 같다. 다 내려놓고 그냥 선배들과 놀았다.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영화를 찍고 기술 시사 때 보니 감독님의 의도를 조금은 알겠더라. 남우는 순수하고 매 상황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민폐처럼 보일 수 있는 캐릭터였다. 중립에서 사건을 보는 유일한 사람이라서 목적을 가지고 연기했다면 밉게 보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캐릭터에 관해 박형식만의 고민이나 해석법이 있었다면
- 오히려 그런 작업을 하지 않았다. 감독님께서 '캐릭터 연구도, 재판 공부도 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현장에 와달라'고 했다. 저야 안 하면 좋은데···. 왜일까? 어리둥절했다. 그리고는 내리 27 테이크를 찍으시더라. 속으로 '그냥 공부하고 오라고 하지' 싶었다.
왜 27 테이크나 찍었나?
- 영화를 보니 알겠더라. 힘을 빼길 바라셨던 거 같다. 3~5 테이크까지는 긍정적이었다. '한 번 더 가자!' 내가 표현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거겠지 했고, 10 테이크 때는 '감독님이 어떤 생각이시지?' 싶었다. 그리고 20 테이크쯤 가보니 자책하게 되더라. '내가 정말 못하나?' 멘탈이 무너지니 문소리 누나가 많이 잡아주셨다.
어떻게 잡아주던가
- 이 긴 시간을 잡아먹으면서 모두를 괴롭히는 거 같아서 속상했다. 홀로 멘붕을 겪는데 소리 누나가 '나도 이창동 감독님이랑 처음 영화 찍을 때 40 테이크씩 찍었어' 하시더라. 모두 처음이라 톤 작업이 어려운 거라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고 거들어주셨다. 그 뒤로는 제가 감을 잡은 건지 톤이 잡힌 건지 순조롭게 진행이 됐다.
연기적인 변화도 생겼겠다
-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은 머릿속에 '어떻게 표현해야겠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이런 스토리에 이런 캐릭터를 그려야겠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남우는 대사만 알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선배님들이 대사를 하면 열심히 듣고 리액션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말처럼 대사가 즉각적으로 나오더라.
상대방의 중요할 수밖에 없었겠다
- 상대방의 연기도 중요하고 그것을 주의 깊게 보지만 기본적으로 제 것은 잘 지켜야 했다. 기본적인 걸 지키면서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연기적인 변화가 앞으로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칠까?
- 잘 모르겠다. 이번 작품은 찍으면서도 계속 불안했었다. 감독님께서 '저 한 번 믿어보세요'라고 할 정도였다. 그간 해오던 방식이 아니니까. 그래도 영화를 보니 감독님의 자신감이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절대 쉽지는 않았다. '배심원들'이기에 가능했었다.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배심원들'을 통해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 작품의 본질을 보는 눈이라고 할까. 드라마는 개성 강한 캐릭터를 보고 그를 통해 감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이라고 하면 영화는 캐릭터보다 메시지에 집중하게 되더라. 연기로 뭔가 하려는 것보다 영화가 주라는 생각이었다. 메시지가 첫 번째 그다음 고민이 있는 셈이다. 그간 저의 연기는 수박 겉핥기였던 거 같다. 작품의 본질을 어찌 꿰뚫느냐. 그걸 깨치는 게 어려운데 남우를 연기하며 새로운 걸 경험했다.
연기 열정, 욕심 등에도 자극을 받았겠다
- 새로운 건 항상 해보고 싶다. 저는 판타지, SF, 청춘, 누아르 다 좋아한다. (임)시완 형의 '불한당'이나 영화 '스물' '형'도 매우 좋고 부러웠다. 그런 작품들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
이제 입대를 앞뒀다. 어떻게 보내려고 하나?
- 보고 싶은 사람들을 빨리 만나고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제가 평소 '집돌이'인데 입대 날짜가 잡히니 얼른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계속 연락하고 보려고 한다. 입대가 그리 걱정스럽지는 않다. 새로운 경험일 거 같다.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하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경험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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