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31일 오전 10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64)·박병대(64) 전 대법관에 대한 2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재판부는 증거 채택 논의 전 검찰 측이 모든 심리를 녹음해 달라는 요청을 허가했다. 검찰은 지난 1차 기일이 끝나자마자 이 같은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음요청이 받아 들여지자 변호인 측은 곧바로 검찰이 이날 제출한 증거목록 중 사법행정권 남용 핵심 증거인 ‘임종헌 USB’ 출력물에 대해 문제를 삼기 시작했다. “원본의 동일성과 무결성을 입증해야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양 전 대법원장 측의 주장이다.
검찰 측은 “지난 공판준비기일에도 관련 논의가 이뤄져 변호인들이 직접 검사실로 찾아와 대조했지만 적당히 보고 돌아갔다”며 “다시 이런 주장을 하면 지정된 기일 외 특별기일을 열어 대조 확인하던지 다시 검사실로 찾아와 출력물 이미지파일과 증거목록을 대조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당사자들끼리 법정 외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일들은 결국 법정 안에서 바뀐다”며 “다시 당사자들끼리 확인하는 방법은 반대”라고 밝혔다. 이어 “하나하나 파악하면 재판이 지연되니 변호인 측이 다음 기일에 입증해야하는 부분을 특정하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강하게 반발하고 재판부가 부정적 입장을 밝히자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 측도 “전수를 할 필요는 없고 랜덤으로 하거나 특정한 부분에 대해 입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에 재판부는 “다음 기일 전까지라도 일부를 특정해 원본 파일의 동일성과 무결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밝혀 검찰이 입증하게 하라”고 전했다.
이날 변호인 측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설명서에 대해 관련되지 않은 내용이 들어있다며 ‘공소장 일본주의’를 지난 기일에 이어 다시 지적했다.
변호인 측은 “저희도 참아왔다”며 “증거설명서에 검찰 주장이나 의견, 해설 등이 있으며 심지어 관련 되지 않은 증거를 끌어들여 증거로 필요하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증거설명서로 증거조사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검찰 측은 “전부 공소사실에 있는 내용을 인용해 기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변호인 측은 “결국 이래서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반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증거 내용을 고지하는 게 증거 서류인데 증거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조사하려는 내용을 미리 설명한 것은 자격이 없다”며 검찰이 제출한 증거설명서를 반환했다. 법조계는 재판부가 불필요한 논란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각별히 조심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재판을 지켜본 법조계 관계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문제를 제기한데 이어 증거조사까지 깐깐하게 보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면서 "보기에 따라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