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곁으로 간 이희호…DJ와 격동의 현대사 쓴 '정치적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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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형 기자
입력 2019-06-1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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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와 민주화에 몸 바친 정치적 동지…47년간 동고동락한 운명공동체

  • DJ 내란음모 혐의 땐 국제적 구명운동…정계 은퇴한 남편 출마 독려

  • "민족과 평화통일 위해 기도" 마지막 유언…평생 민주주의·인권에 헌신

'수송당(壽松堂·이희호 여사 호)'이 평화의 여정을 마치고 '인동초(忍冬草)' 곁으로 갔다.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0년 만에 후광(後廣·DJ 호)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에 마침표를 찍었다.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굴곡진 삶을 산 수송당은 영면했지만, 민주와 평화를 향한 그의 정신은 영원하리라.

고(故) 이희호 여사는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친 '민주화 운동가'이자 '재야의 정신적 지주'였다. DJ 아내를 넘어 '정치적 동반자'로 불렸다. 군부독재 시절 땐 DJ와 함께 민주화의 최전선에 섰다. DJ가 이희호였고, 이희호가 DJ였다. 고인은 11일 공개된 유언에서도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DJ와 함께한 47년의 삶···민주화 투사이자 조력자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왼쪽)와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 [사진=연합뉴스]


1922년 의사 집안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고등여학교(이화여고 전신)·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대 전신)·서울대 사범대를 거쳐 미국 램버스대와 스카렛대에서 유학한 이른바 '신(新)여성'이었다.

독신으로 여성 운동가의 길을 걷던 고인은 1962년 DJ와 운명적인 결혼을 하면서 제2막 인생을 시작했다. 반대도 많았다. 주변에선 고인이 당시 정치 낭인에 불과했던 DJ와 결혼을 한다고 밝히자, "안타깝다"며 만류했다. 이 여사는 후일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DJ와 운명공동체였던 고인의 삶은 굴곡졌다. DJ는 결혼한 지 열흘 만에 '반혁명 혐의'로 체포됐다. 고인의 내조 속에 절치부심하던 DJ는 1971년 대선에서 정적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맞붙었다. 이 여사는 찬조연설에서 "만약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결과는 95만 표 차로 석패. 군부독재 시절의 눈엣가시였던 DJ는 1971년 의문의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미국 망명(1972년)→납치사건(1973년)→가택연금과 투옥(1973∼1979년)→내란음모 사건과 수감(1980년)→미국 망명과 귀국 후 가택연금(1982∼1987년)' 등의 온갖 고초를 겪었다.

◆DJ 사형판결 당시 국제적 구명운동···"참으로 먼 길 걸었다"

이 여사는 2008년 출간한 자서전 <동행>에서 "어둡고 쓸쓸한 감옥과 연금의 긴 나날들, 이국에서의 망명 생활 등은 신산하고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며 "독재는 잔혹했고 정치의 뒤안길은 참으로 무상했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운데)와 심상정, 여영국 의원 등이 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고인이 DJ의 정치적 동지로 각인된 것은 후광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다. 이 여사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며 국제적인 구명운동을 펼쳤다.

이후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족쇄가 풀린 DJ는 13∼14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연거푸 낙선했다. DJ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약속 번복 비판' 속에 출마한 1997년 15대 대선에서 DJ는 네 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남편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DJ의 출마를 독려했다.

70대 후반의 고령에 청와대 안주인이 된 이 여사는 단순한 내조 역할을 넘어 남북평화·여성인권 등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퍼스트레이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DJ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도 이 여사의 내조가 한몫했다. 고인은 당시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 전했다.

이 여사는 DJ가 2009년 8월 서거할 때까지 47년간 함께했다. 고인은 자서전에서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며 "문득 돌아보니 극한적 고통과 환희의 양극단을 극적으로 체험한 삶"이라고 회고했다. 수송당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민주·평화·여성·인권' 등에 대해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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