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렁 입법회(홍콩 국회 격) 의장은 이날 오전 11시(현지시각)로 예정됐던 심의 스케줄을 일단 연기하기로 했다고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이 이날 보도했다. 렁 의장은 다만 언제 다시 심의를 진행할 지 구체적인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시위대는 비록 이날 2차 심의가 일단 연기되긴 했지만 “이는 성공은 아니다"며 "정부가 언제든지 심의 시간을 변경해 처리할 수 있다"고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앞서 홍콩 입법회는 12일 범죄인 인도법안 개정 2차 심의를 가진 후 여드레 후인 20일 3차 심의와 표결을 강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상 밖으로 빠르게 입법이 이뤄지면서 이는 시민들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보도에 따르면 2차 심의 개시가 예정된 전날 밤부터 이를 저지하려는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 주변으로 몰려들며 이날 아침 수천명의 시민들이 이미 입구를 막았다. 일부 의원들은 아예 입법회 건물 근처에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홍콩 정부청사가 있는 애드미럴티 일대도 시위대로 꽉 채워졌고, 홍콩 섬 중심부인 하코트로드는 쏟아져 나온 시민들 때문에 일찌감치 도로가 통제됐다. 헬멧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들도 대거 배치됐다.
법안 추진을 주도해 온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시위가 폭력 시위로 변질될 수 있다며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주말인 9일 홍콩 도심에서 있었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 반대 시위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00만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참가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유혈 사태도 벌어졌다.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에는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홍콩은 영국, 미국 등 20개국과 인도 협약을 맺었지만, 중국과는 20년 간 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중국이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 등을 본토로 송환하도록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 홍콩 시민들이 이에 반발하며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홍콩 정부는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인 반면, 시위대는 법안을 철회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간다고 주장하는만큼 당분간 양측간 팽팽한 대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미국도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미·중간의 새로운 갈등 요소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각) 홍콩 범죄인 인도법 개정과 관련한 성명을 내고 "이는 홍콩에 살고 있는 8만5000명의 미국인들의 안전을 해친다"며 "향후 수일 내에 초당적인 '홍콩 인권과 민주주의 법'의 도입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미국의 제스처는 자치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들의 손을 들어주는 동시에,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돼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더 이상 홍콩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중국 인민일보 해외판도 12일 "홍콩의 일부 시위대는 외국의 반중세력과 결탁해 사회적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번 홍콩 범죄인 인도법 개정이 홍콩 사회 각계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음을 강조했다. 신문은 이 기간 4500건 서면의견과 3000여건 동의서를 받았다며 법안지지자들은 인도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홍콩은 '탈주범들의 천국'이 될 것을 우려했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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