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 쏠린 눈]강제징용 배상문제와 일본기업의 한국투자 전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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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9-06-2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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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의눈]한일청구권 협정과 외교대타협, 시간이 많지 않다


# 2018년 대법원의 판결 이후 8개월

2018년 10월30일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 때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고 최종 확정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개인에게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왔으나, 대법원은 이 협정은 정치적 해석일 뿐이며 개인 청구권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일본제철(일제 때 신일본제철)에 징용되어 노역을 한 뒤 임금을 받지 못한 4명이 기업을 상대로 낸 청구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내린 것이다.

이 판결은 한일 관계를 결정적으로 냉각시켰다. 일본은 한국이 정부간 합의로 국회 비준동의까지 받은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한국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효력 범위(개인 청구권 적용 여부)에 대한 대응 논리를 내놓아야 했으나, 대법원 판결 이후 8개월간 '침묵'했다. 대응논리를 세우는 것이 쉽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다.

# 노무현 정부 때의 판단을 뒤집는 부담

역대 한국정부와 사법에서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정리되었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이 문제에 대한 재론이 있었으나 일본 청구권 배상 자금 중 무상 3억 달러에 징용 피해 보상이 감안되었다고 판단한다. 대신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970년대에 이어 두번째 보상을 함으로써 징용 보상은 한국 정부의 책임 문제임을 확인한 바 있다.

2018년 대법원은 이런 판단을 뒤집은 것으로, 정부는 이에 대해 일본에 충분한 소명이 필요한 상태였다.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한 우리 입장이 바뀐 것인지, 대법원의 달라진 인식에 동의하는 것인지를 밝혀야 했지만, 정부는 "민주국가에서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로,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 개별 피해자 배상과 같은 예측가능한 사안에 대해 치밀하게 따져보지 못한 채 엉성한 협약을 맺은데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포인트에 대해 정부가 확실한 입장을 정하고 설득을 해야하는 입장이지만, 과거 정부의 입장을 번복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작년 5월 도쿄에서 한일정상회담을 가진, 문대통령과 아베총리.]



# 배상금 양국기업이 부담하자는 정부 제안, 일본은 일축

우리 정부가 19일 내놓은 제안은 배상금을 한국과 일본의 기업이 낸 출연금으로 지급하자는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해결책을 낸 것인데, 상황이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측에서는 딱 잘라 거절했고 기업들의 수용 여부도 두고봐야할 문제다.

이런 가운데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압류가 그간 진행되어 조만간 압류자산을 피해자들에게 분담하는 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면 '보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 문제는 그냥 뭉기적거리고 있다 보면 저절로 풀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시간을 끌수록 더 큰 국가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

현재 국무총리실에서 파악하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는 14만여명이다. 2018년말 기준으로 한국에 투자한 일본 기업은 395개. 대부분은 '징용'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후속 소송이 시작되면, 한국내 많은 일본기업들은 철수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 또한 '배상 리스크' 때문에 포기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 일본의 한국투자가 전멸한다?

올해 1분기 일본의 해외 직접투자는 작년 동기비 168% 늘었으나 한국에 대한 투자는 6.6% 감소했다. 이것도 석연찮은 조짐이다. 일본 기업과 공동투자를 하는 다른 나라의 기업들도 한국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렇게 생겨나는 손실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아직 예측조차 제대로 나오고 있지 않다. 수출 위축 등 가뜩이나 경기 하방을 전망하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이슈가 경제를 더욱 피폐하게 하는 꼴이다.

28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일본은 정상회담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한국과 냉전을 벌이고 있다. 징용 배상 문제 등 한일 갈등 국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내보이는 특유의 과장스런 고압태도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불통(不通)의 양국 관계는 우리에게도 너무 좋지 않다. 적극적인 대화와 협상이 절박하다.

# 문재인 정부, 위기감 갖고 한일외교 복원을 

문대통령이 오사카의 기회를 놓치면 외교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덫이 될 수 있다. 역사 속의 '항일'만큼이나 현실 속의 '친일'은 같은 무게로 중요하다. 일본 전문가들의 조언처럼, '욕먹을 각오 하고' 큰 타협을 이끌어내야 할 때다. 1965년 협정의 분쟁 해결절차에 따를 것인지, 아니면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양국이 대국적인 외교적 타협을 할 것인지 구체적 고민을 해야한다. 양쪽 다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양국의 허심탄회한 소통이 필요하다. 비상한 결심으로 아베를 만나, 과거를 털고 미래를 여는 악수를 할 수 있겠는가.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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