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와 그 계열사 60여 곳을 거래제한 기업으로 지정했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역할을 한다고 판단 아래 화웨이가 미국 기술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기존 네트워크 보수·점검이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위한 목적에 한해 거래제한을 90일 유예했지만, 화웨이의 새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은 제재를 받는다.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즉각 제재에 동참하며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들 회사는 거래제한 규정을 꼼꼼히 살펴본 뒤 제재 대상이 아닌 일부 제품에 한해 화웨이에 납품을 재개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처음엔 거래제한에 관한 경험이 별로 없던 터라 일단 거래를 끊었지만 법률 자문과 상무부 논의를 거쳐 화웨이에 공급이 가능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눴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은 거래제한 예외 규정에 주목했다. 이들 기업은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 가운데 미국 원천기술이 25% 이하로 적용된 경우 제품의 경우 거래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제품을 화웨이에 다시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크론은 전 세계에서 사업을 운영 중이며 싱가포르, 일본, 대만에 공장을 두고 있다. 인텔은 중국과 아일랜드에 공장이 있고 이스라엘에는 디자인센터와 공장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화웨이에 일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화웨이와 거래를 하는 것 자체가 제재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일부 거래재개는 미국 기업들이 받을 재정적 충격을 줄여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기업들은 매년 화웨이에 110억 달러(약 12조7000억원)어치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미국 반도체업계를 대표하는 반도체산업협회(SIA)의 존 뉴퍼 회장은 "미국 정부와 논의를 해봤는데 일부 제품을 화웨이에 공급하는 것은 거래제한 및 관련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 제재의 허점이나 해석의 차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단지 소수만 알고 있는 내용일 뿐"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으로 기술수출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합법적으로 제재를 피할 방법을 찾는 일은 한층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주 미국 상무부는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 슈퍼컴퓨터 기업 4곳과 국영 연구기관 1곳을 추가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또 또 중국 감시장비 업체들도 제재 부과 대상에 올리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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