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르포] "미국 도시재생, 어디까지 가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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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피츠버그=노경조 기자
입력 2019-06-2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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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 맨해튼 서쪽 핫플레이스로 재탄생

  • 피츠버그, 첨단산업의 메카로 발돋움

도시도 나이를 먹는다. 시대별로 주요 산업도 달라진다. 그래서 도시재생 사업은 제아무리 미국이라도 피해갈 수 없다. 물론 도시(주)별로 추구하는 스타일은 다를 것이다. 이에 금융업 및 상업의 중심지인 '뉴욕'과 철강산업에서 첨단산업으로 변신을 꾀한 '피츠버그'에서 도시재생의 흔적을 찾아봤다.

◇맨해튼의 서쪽 핫플레이스 '허드슨 야드·하이라인 파크'
미국 뉴욕시 구석구석을 걷다보면 의외로 공사 중인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건물이 오래된 탓도 있겠지만, 사실상 9·11 테러 이후 복구와 맞물려 도시재생에 더욱 속도가 붙은 영향이다.

블록마다 우뚝 선 뉴욕 맨해튼의 고층 빌딩들 사이로 '허드슨 야드'(Hudson Yards)에서 '하이라인 파크'(New York High Line Park)로 이어지는 도시재생(재개발) 지역이 있다.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내국민들도 삼삼오오 몰려와 인증사진을 찍는, 최근 뉴욕에서 가장 힙(Hip)한 곳이다.

허드슨 야드는 서쪽 허드슨 강변에 들어서는 초대형 복합 주거·사무·쇼핑·여가 단지다. 과거 철도차량기지로 낙후된 이곳에 올림픽 경기장을 지으려다가 유치가 무산된 후 지금의 공간으로 조성됐다. 총사업비만 250억 달러(약 28조원)에 달한다. 지하철 허드슨 야드 역 밖으로 나오면 새로 짓는 건물들은 물론, 귀를 파고드는 공사 장비 소리 틈에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뉴욕 맨해튼 허드슨 야드에 들어선 '더 베셀'(The Vessel) 앞이 인파로 붐비고 있다. [사진=노경조 기자]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조형물이 있다. 바로 더 베셀(The Vessel)이다. 벌집 모양의 2500개 계단으로 이루어진 금빛의 이 조형물은 영국 건축가인 토머스 헤더윅이 설계했다. 도심 속 인공 산을 표방한다. 계단을 오르며 뉴욕 시내를 조망하는 것이 더 베셀의 기능이다. 단순히 보이는 조형물을 세운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토록 만든 것이 색다르다. 한 번에 입장 가능한 인원이 제한돼 있고, 관람시간도 약 15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두 달치 예약이 꽉 차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더 베셀 뒤편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하이라인 파크가 나온다. 폐허가 된 고가철도에 새 숨을 불어넣은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다. 비영리단체인 '하이라인의 친구들'(The Friends of High Line)이 철거 직전인 이곳의 독특한 조망권을 앞세워 공원화했다. 하이라인은 구간별로 콘셉트가 다르다. 기저에는 여유와 사색이 깔려 있다.
 

미국 뉴욕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이자 관광지 및 쉼터인 하이라인 파크 모습. [사진=노경조 기자]


디자인은 2004년 공모를 통해 결정됐다. 공사는 3단계로 나누어 시행됐다. 허드슨 야드와 맞물린 30~34번가 구간이 지난해 개장한 3단계 부지에 해당한다. 1~2단계 구간은 미트패킹과 첼시 지역의 건물 사이를 관통한다. 모든 공사는 2014년 9월 마무리됐다. 물론 걷다보면 인근에 한창인 공사 현장들을 볼 수 있다. 틈틈이 수리하고, 곳곳에 다양한 볼거리와 이벤트가 마련된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구간 전체를 걷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알려진 바로는 1시간 30분이지만, 실제 걷다보니 눈깜짝할 새 끝났다.

뉴욕시에 따르면 하이라인 파크 개발사업은 1만2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경제적 효과는 약 20억 달러(2조원) 수준이다. 어느새 뉴욕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이곳은 오늘도 가족, 친구 또는 연인들로 붐빈다.

◇대학 유치로 '인재·일자리' 두 마리 토끼 잡다
맨해튼의 서쪽이 개발 사업으로 바쁘다면, 동쪽은 산학 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바로 맨해튼 인근 작은 섬인 '루스벨트 아일랜드'(Roosevelt Island)가 주인공이다. 이곳에는 코넬대 공과대학인 코넬텍(Cornell Tech)이 자리잡고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공이다. 그는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 유치 및 뉴욕의 도약을 위해 1억 달러를 걸고 공모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인재 양성과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이 캠퍼스는 2017년 가을 문을 열었다. 실제 코넬텍과 뉴욕시는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코넬텍 관계자는 "캠퍼스는 이 지역 학교들에 기술 교육을 도입하기 위한 '전용 K-12 이니셔티브'를 갖고 있고, 더 많은 젊은 여성들의 기술 학위와 경력을 장려하기 위해 뉴욕시립대학과 'WiTNY'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넬텍 루스벨트 아일랜드 캠퍼스에서 스타트업 창업을 위한 첫걸음으로 '오픈 스튜디오'가 열리고 있다. [사진=노경조 기자]


실제 체류기간 중 코넬텍에서 2년마다 개최하는 오픈 스튜디오(Cornell Tech hosts Open Studio at Roosevelt Island Campus)가 개최됐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팀을 이뤄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스타트업 창업의 경쟁을 벌이는 장이다. 조용한 루스벨트 아일랜드가 학생들과 학부모 외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한편에는 방문객들이 직접 사업 아이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이곳뿐만 아니라 맨해튼 북쪽의 대표적 슬럼가인 할렘(Harlem) 일대에는 첨단연구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컬럼비아대학이 뉴욕시가 발동한 토지수용권을 활용해 '맨해튼 빌'(Manhattan Ville)'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것. 금싸라기 땅도, 낙후된 공간도 교육시설로 새단장하는 뉴욕시의 지혜가 돋보인다.

또 아마존이 뉴욕 롱아일랜드시티를 제2본사 지역으로 선택하면서 코넬텍 등은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아마존 또한 인재 확보를 입지 선정의 핵심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을 금융 중심지에서 나아가 정보기술(IT)·혁신의 중심지로 키우려는 뉴욕시의 큰 그림을 지켜봄직하다.

◇피츠버그의 변신은 '무죄'
"미국 내 도시 가운데 가장 많은 446개의 다리(교량)가 있습니다. 모두 철로 지어졌죠. 멋지지 않나요?"

과거 철강산업으로 부흥했던, 오늘날에는 공공-민간 협력 도시재생의 표본으로 꼽히는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피츠버그시(市). 앨러게니 강(江)과 머논가헬라 강, 오하이오 강 등 3개의 강이 만나는 이곳에 발을 들인 후 처음 들은 피츠버그에 대한 설명이다. 앤디 워홀 브릿지, 레이철 카슨 브릿지, 로베르토 클레멘트 브릿지 등 다운타운에서 강 건너편으로 뻗어나간 노란색 철교들이 눈에 띈다.
 

듀케인 인클라인 위에서 본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시 전경. [사진=노경조 기자]


야구선수 강정호가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우리 귀에도 익숙해진 피츠버그는 엄연한 산업 도시다. 관광 차원에서는 여행사 가이드를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입국 심사 때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다고 말하면 미심쩍은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오늘날 피츠버그는 주요 산업군이 철강에서 '로봇', '자율주행차' 등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도시재생이 있다.

피츠버그에서의 철강산업은 1875년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가 철강산업을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1911년에는 미국 전체 소비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철강제품을 생산했다. 하지만 산업 재구조화로 인해 철강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됐고, 빈 자리를 교육·의료서비스에 이어 4차 산업이 채워나가는 중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시정부와 입주 기업, 대학교, 지역주민 등 도시 전체의 노력이 주효했다. 삶의 질을 높여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만드는 게 하나의 목표였다. 이들은 산업 폐기물이 넘쳐나던 수변공간을 정화·공원화하고, 일대 옛 제철소 부지에 쇼핑몰을 세웠다. 레저시설, 스포츠경기장 등도 구축했다. 전망대를 오르내리는 인클라인만이 철강산업 시대의 잔재로 남았다. 화물과 노동자를 실어나르던 인클라인은 이제 하나의 관광 코스가 됐다.
 

옛 제철소 자리에 쇼핑몰 등이 들어선 사우스사이드 웍스(Southside Works) 모습. [사진=노경조 기자]


실제 사우스사이드 지역 사우스사이드 웍스(SouthSide Works)에는 오래된 제철소가 있던 곳에 쇼핑몰 등이 들어섰다. 시에서 1000에이커 이상의 해당 부지를 사들여 개발한 결과다. 홈스테드 지역의 더 워터프론트(The Waterfront) 쇼핑몰 자리도 한때 미국에서 가장 큰 제철소가 가동되고 있었다. 쇼핑몰 주변에는 상점과 식당, 레저시설 등이 즐비하다. 하지만 체류 기간 중 방문했을 때에는 비 내리고 바람 부는 궂은 날씨에 평일 오후였기 때문인지 예상보다 활발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일자리 창출하는 기업·대학, 후원하는 정부
피츠버그는 2010년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선정됐다. 도시재생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츠버그대학교(Pitt), 카네기멜론대학교(CMU)와의 산학 협력 성과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CMU는 철강왕 카네기가 사회에 환원한 이익금을 바탕으로 설립됐으며, 모든 이에게 개방된 카네기도서관, 워싱턴D.C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과 견줘도 손색이 없는 카네기자연사박물관 등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피츠버그 교육·문화 인프라의 한 축을 담당해온 셈이다.
 

카네기 자연사박물관 외부에 설치된 공룡 구조물. [사진=노경조 기자]


도시재생을 위해 Pitt와 CMU가 연구개발(R&D)에 지출한 비용도 각각 8억6100만 달러, 2억4200만 달러에 달한다. 두 대학은 지대한 역할 만큼 자부심도 대단했다. 저스틴 카셀(Justine Cassell) CMU 교수는 피츠버그 도시재생에 기여한 공을 인정하며 "컴퓨터공학대학의 성장이 민-관 합작의 대표적인 예"라고 전했다. 로봇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CMU는 지난해 가을 학기에 인공지능(AI) 학사 과정을 최초로 설립하기도 했다.

이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 내 연구소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은 물론이고, 차량공유기업 우버는 4차 산업과 관련한 새로운 시도를 피츠버그에서 시작하고 있다. 바로 자율주행차 시험운행이다. '앗' 하고 인지하는 순간 지나가는, 도로 위 지붕에 센서를 단 차량을 간간히 볼 수 있다. 포드가 출자한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 파트너도 피츠버그에 본사를 두고 있다. 로봇, AI 등 관련분야 인재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구글 또한 피츠버그에 자리잡은 지 오래다.
 

베이커리 스퀘어에 입주해 있는 구글을 중심으로 일대 우범지역이 번화가로 변모했다. [사진=노경조]


조화롭게도 정부는 먹거리를 찾아나선 기업과 대학들을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교육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톰 머피(Tom Murhpy) 전 피츠버그시장은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형 도시재생'이란 주제의 세미나에서 "예전에는 제철소에서 일하면 됐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낮았다"며 "개발 방향에 이런 점들을 반영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구심점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톰 머피 전 시장은 피츠버그 도시재생의 핵심 인물이다. 현재는 글로벌도시부동산학회(Urban Land Institute, ULI)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그는 시장으로서 도시재생을 추진하던 당시 인구 감소로 인해 부족해진 재원은 정부가 먼저 인프라에 투자하는 '파이낸스(Finance) 프로그램'을 통해 조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 유치에 힘써 일자리 창출과 함께 법인세, 소득세 등이 자연스럽게 납부되도록 했다. 그는 "몇 백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단 하나의 부정부패도 없었다"며 "청렴도도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기금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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