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의 데이터政經] - 승리하려면 제3당과 손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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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입력 2019-07-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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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팔아먹어도 무조건 000당을 찍는 35%가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이 남긴 유명한 어록이다. 지난 19대 대선 당시 두 보수당 후보의 합계득표율은 30%대 초반으로 다소 하락했으나 득표수는 1,000만표 이상을 유지할 만큼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이 데이터는 보수궤멸 분위기 속에 치른 선거라고 무시하면 큰 코 다칠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이성적으로는 내가 뽑은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구속까지 됐다면 수치스러워서 도저히 다시 그 정당 후보를 지지해줄 순 없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이렇게 엄청난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의 심리 저변에는 도대체 무엇이 담긴 것일까?

 

[사진=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제공]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이 최근 발간한 <마음의 지도>에는 이러한 의문을 풀어줄 만한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는 과학칼럼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유명 정치학자 등 논문을 제법 소개해온 별난 인물이다. 에모리대학 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은 200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열성적인 공화·민주당원 각각 15명씩을 선발해 3개월간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웨스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공화당)과 존 케리 상원의원(민주당), 그리고 무당파 배우 톰 행크스 등 세 사람의 연설문을 각각 6건씩 제시한 후 말과 행동간 모순정도를 평가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실험기간 중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들여다보며 뇌의 활성화여부를 확인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양당 당원 전부 상대당 후보를 일방적으로 혹평했다. 무의식중에 확증편향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었다. 확증편향은 자신이 가진 정보만을 찾아서 받아들이려는 성향, 즉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심리상태다. 그러나 당파가 없는 톰 행크스의 모순적 연설에는 공화·민주당원 모두 일치된 평가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또한 웨스턴은 뇌 영상자료를 보면서 확증편향이 발생했을 때 전두엽에서 이성과 관련된 영역은 침묵을 지킨 반면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은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확인했다. 활동이 증가된 부위는 복내측전전두피질(VMPFC)이다. 이 부위는 공감·동정·죄책감 같은 사회적 정서반응과 관련된다. 웨스턴은 미국 유권자의 정치성향이 무의식적인 확증편향에서 비롯되며, 확증편향은 정서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2006년 미국 심리학회 총회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이후 민주당의 주요 선거자문역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유사한 논문은 또 있다. 캔자스대학 정치학자 패트릭 밀러 교수는 ANES(스탠포드대학과 미시간대학이 공동운영하는 연방선거연구소) 기반으로 2010년 중간선거 연구결과를 2차 분석하는 유권자 태도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평균적인 민주당과 공화당 유권자들은 정책이슈를 바탕으로 정치적 선택을 하는 대신 스포츠경쟁에서 광팬처럼 행동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밀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41%의 양당 당원들은 정책 또는 이념적 목표보다 오로지 선거승리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 반면, 35%만이 정치참여의 중요한 동기가 정책이라고 응답했다. 24%는 둘 다 또는 무응답이다. 심지어 당원들 38%는 “당선을 위해서라면 도둑질, 부정투표, 거짓말, 상대 후보에 대한 폭력, 마타도어 등 온갖 전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휴스턴대학 스콧 클리포드 정치학교수도 2008년 대선결과를 토대로 2년 가까이 「충성도가 정치적 정체성에 미치는 정도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ANES로부터 제공받은 61,420명 패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애국심, 도덕성 등 5개 항목을 수치로 환산했다. 결론은 공화당원의 충성도(0.71)가 민주당원(0.63)보다 월등히 높았다. 강력한 지지자가 될 확률 역시 공화당원(19%)이 민주당원(17%)보다 더 많았다. 그는 이 결과를 2016년 10월 미국 정치행동지에 발표했다.

이상과 같은 연구결과를 받아들인다면 양당구도인 미국은 확증편향을 갖는 고정지지층을 제외하고 스윙보터(Swing Voter) 공략이 관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다당 체제에서는 제3당이 곧 스윙보터를 대변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소선거구제이지만 우리나라는 87년 민주화 이후 여덟 차례 총선에서 절반이나 제3 원내교섭단체가 출현했다. 사실상 2.5당 체제라고 할 수 있다. 20대 총선 당시 유력 여론조사기관 및 정치평론가들 대부분은 새누리당의 과반수의석은 물론이고 심지어 3분의 2까지 전망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여소야대는 물론이고 민주당에게도 밀리는 2위에 그쳤다. 주된 원인제공자는 국민의당이었다. 20년 만에 출현한 제3 원내교섭단체인 국민의당은 호남의석 싹쓸이와 함께 수도권에서도 후보자를 낸 선거구에서 평균득표율 무려 18.3%라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수도권 국민의당 후보가 20% 이상 득표하면서 새누리당 후보의 표를 잠식한 31개 선거구 가운데 11개 지역만 새누리당(親새누리 무소속 포함) 당선을 허용하며 20(민주당 및 국민의당 승리) 대 11(새누리당 승리)이라는 아주 괜찮은 성적표를 남겼다. 이는 수도권 122석 중 82석을 민주당이 석권하면서 제1당으로 올라서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이러한 어부지리는 장미대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 중도·보수 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1, 2위 표차는 사상 최대를 남겼다.

 

[사진=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제공]


한편 15대 총선 당시 자민련은 50석을 획득해 지금까지 제3 원내교섭단체로는 최대의석을 차지했다. 당시 국민회의 분당으로 통합민주당(속칭 잔류민주당)과 함께 수도권에서 각각 14.8%와 13.6%를 얻어 단순합계 28.4%를 득표했으니 수도권 제3세력 득표율로도 아직은 최대 수치이다. 이를 바탕으로 신한국당의 과반수를 11석이나 저지했다. 14대 총선 역시 스윙보터를 공략한 국민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여러 공약을 내걸고 민심에 잘 파고들었으며, 수도권 평균득표율 21.8%와 강남벨트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7인방(김동길, 조순환 등)의 당선이다. 이 때문에 3당 합당으로 한때 218석에 달하던 여당인 민자당은 총선 직전까지도 193석을 유지했으나 과반수에서 1석 미달하는 망신살을 뻗고 말았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후보단일화를 한 19대 총선을 제외하면 지난 일곱 차례 총선은 내용적으로 다자 구도이다. 그러나 16~18대 총선은 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당과 한국당 계열 정당의 양자구도로 결판이 났다. 그 까닭은 강력한 제3 중도·보수정당이 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 유권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점이 제3당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이다. 18대 자유선진당은 수도권 득표율이 15대 자민련의 2분의 1 수준에도 미달한 6.1%에 그쳤다. 그 동조화 현상으로 텃밭인 충청권조차 24석 중 14석에 머물러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17대 새천년민주당 역시 지역구득표율은 민주노동당에 크게 앞선 3위를 기록했지만 수도권에서는 평균 8.7%에 그치며 단 1명의 당선인도 배출하지 못했다. 따라서 원내교섭단체는커녕 10석 미만 미니정당으로 쪼그라드는 수모를 톡톡히 겪어야 했다. 결론은 중도·보수성향의 제3당이 캐스팅보트를 쥐는 형국이다. 제3당이 수도권에서 약진하면서 보수당에 대한 분할투표를 할 때에 민주당계열이 가장 유리하다. 13~15대 보수여당은 과반수에 실패했고 20대에는 2당으로 밀렸다. 강력한 중도·보수 제3당 때문이었다. 16대 야당 한나라당은 과반수에 근접하며 승리했다. 제대로 된 제3당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3당은 바로 스윙보터의 정서를 강력하게 파고들며 그들을 어루만져주는 정당이다. “충청도 핫바지” “반값 아파트” “지역등권론” “새 정치” 등등 단순한 메시지이지만 ‘정서투표’를 갈망하는 스윙보터에 대한 전달력만큼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사진=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제공]



최광웅(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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