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만 칼럼] ​美中 문명충돌 ..'야만의 시대' 돌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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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19-07-0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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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과 충돌은 현 시대 문명의 야만성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평화라는 문명을 외치지만 이면에는 정복이라는 야만성이 이글거린다. 국제 관계를 강자만 살아남는 냉혹한 세계로  바라보는 홉스적 사고에 의해 공공선은 축소되어 가고 이성을 잃어버린 거대한 괴물이 세상을 뒤흔드는 모습이다. 매 시대마다 생산력 향상과 과학 발전은 인류사회를 한 단계씩 더 진화시켜 가지만, 그 진화된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문명과 야만은 구분된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삶과 행복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된다면 문명적이라 할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야만적이라 할 것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국과 중국이 문명을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야만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적 사고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

미·중 패권전쟁은 동서양의 체제와 가치관의 경쟁으로 비문명화된 야만적 싸움일 뿐이며, 자칭 서구 민주주의 수호자 미국이 동양의 이민족인 중국과의 문명 충돌 구도로 몰아간 결과이다. 최근 카이론 스키너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은 지난 4월 29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래안보포럼'에서 중국과의 충돌을 "진정으로 다른 문명과 다른 이데올로기와의 싸움"이라며 "우리가 백인(Caucasian)이 아닌 대단한 경쟁자를 가지는 것은 처음"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약 180년 전에 유럽민족에 의해 정복당했던 잠자는 사자 중국이 깨어나면서 나타나는 두려움과 '야만성'의 표현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은 어느 한 지역에서 강력한 지역 패권국이 등장하는 것을 봉쇄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성장과 영향력 확대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은 문명적인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기반을 둔 상호공존보다는 야만적인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공격적 현실주의의 패권적 위계질서를 선호하는 것이다. 최근 미∙중 간 무역 분쟁도 미국이 단순히 무역 적자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에서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본질은 무역(관세), 기술(지적재산권), 통화(환율), 자원(에너지) 분야 등 다방면에 걸친 복잡한 경제 전쟁이다. 문제는 세계경제의 공급망(supply chain)을 와해시키고 국제사회의 사회적 잉여가 감소하는  야만적 행위이다. 

비문명적인 행태는 세계 각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야만성을 극복하고 문명의 길을 향해 노력하는 변증적 진화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지난달 말에 끝난 오사카 G20 회의는 많은 국가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채택을 바랐던 반보호무역주의나 지구온난화 문제해결을 위한 파리기후협정 이행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다자간의 해법에 대한 건설적 내용 없이 폐회되어 자국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강대국의 야만성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19개국에 달하는 다수국가가 모두 세계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보호무역주의를 청산하고 개방된 다자주의 개방경제로 가자는 공존공생의 목소리를 거절함으로써 여전히 다자주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일방주의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 세기의 관심을 모았던 미·중 무역담판도 당분간 휴전을 함으로써 급한 불은 껐지만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므로 아직도 세계 경제의 암운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는 끊임없는 갈등의 소지가 있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도 다양하다. 국제문제 및 분쟁의 해결에는 군사적 방법이 동원되기도 하고 국제기구와 조약 등을 통해 담판과 타협의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기도 한다. 문명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더 잘 살기 위해 문화, 행동, 생활, 제도 등 다방면에서 얻은 가치들을 종합한 진보의 축적이다. 문명사회란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한 실체로 대하며, 권력이 규범적·평화적 절차에 따라 주기적으로 교체 순환되고, 소수가 다수에게 자행하는 권력남용을 통제하는 이성적 사회이다. 단순한 생활 향상보다는 생활의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회를 말한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문명이 아니라 야만의 길로 가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도,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도 어느 한 문명의 승리를 말할 뿐 보편적인 인류의 공생과 공존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미래의 인류사회는 미국 문명과 중국 문명의 융합을 바라고 있다. 냉전시대의 승전국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국제기구들을 자국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는다고 탈퇴하고, 다른 국가들에는 자국편을 들라고 강요하면서 겁박까지 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승부에만 집착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화민족의 부흥을 꿈꾸며 샤프파워(sharp power)를 강화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 그리고 소아병적 탈아입구 사고에 매몰된 아베 일본 총리 등 소위 강대국 지도자들의 헝클어진 리더십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준엄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들이 과연 70억 인류의 생존을 걱정하면서 글로벌 위기를 관리할 능력이 있을까? 씁쓸한 마음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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