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2015년 12월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에 의해 그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유럽의 경제난 속에서 빚더미에 앉은 그리스를 구해내고,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는 등 ‘도덕적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전통적인 강대국 지도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지금 “세계는 메르켈에 주목하고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현실이 된 날 메르켈이 떠올랐다. 유럽을 휩쓴 반(反)난민·극우 민족주의 포퓰리즘 앞에서 용기 있게 ‘열린 유럽’을 외치던 그의 모습 위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총리의 얼굴이 겹쳐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도 오버랩됐다. 땅덩어리가 크고, 인구가 많고, 경제규모가 크다고 다 대국(大國)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4년 8개월째 총리를 맡고 있는 메르켈은 2021년 퇴임한다. 동북아엔 왜 그만한 지도자가 없을까.
이미 늦은 걸까. 한·일 양국 국민의 뇌리엔 오사카 G20 회의에서 두 정상이 8초간 짧은 악수만 하고 돌아서던 모습만 깊게 남았다. 한·일관계의 분절(分節)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오래 기억될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회의 직전까지도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뒀으나 아베 총리는 외면했다. 아베가 ‘주인’이고 문 대통령은 초대받은 ‘손님’이고 보면 꼭 그랬어야 할까. 일단 회담은 하고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는 추후 계속 논의할 수도 있었다. 대국의 지도자로서 현안을 가려볼 줄 아는 선별력(selectivity)이나 아량, 인내심이 조금 더 발휘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일본정부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3개 소재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하면서 “양국 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어느 한 국가에 무역 및 비관세장벽에 관한 혜택을 주면 다른 나라에도 같은 혜택을 주도록 하고 있다. 또한 한 번 준 혜택-예를 들면 화이트 리스트-은 충분한 사유가 없는 한 철회(롤백)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언급한 ‘신뢰 훼손’이 철회의 사유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아베 총리의 언행은 실망스럽다. 그는 G20 회의에서 자유무역 수호자임을 자처하면서 각국 정상들에게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며 안정적인 무역 투자 환경을 촉구하는 성명에 동의하라”고 적극 권장했다. 그런 그가 회의가 끝나자마자 한국을 상대로 반(反)시장적, 반(反)자유무역적 조치를 취했으니 앞뒤가 안 맞는다. 일본도 2010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규제로 곤욕을 치르지 않았는가. 아베는 이번 조치가 “WTO 규정에 위배되는 건 아니다”고 애써 강변했다.
한국인들은 아베 총리가 이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걸, 아베 총리는 알아야 한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우익 결집을 위해 이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있다는 게 한국사회의 보편적 인식이다. 수시로 벌어지는 혐한(嫌韓) 시위도 아베의 우경화 야망과 무관치 않다고 믿는다. 아베는 국내정치에 반한(反韓) 감정을 이용하려는 어떤 생각도 버려야 한다. 이번 싸움으로 한국기업의 탈(脫)일본을 부추겨 일본 기업들도 피해가 크고, 중국만 승자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더 많다. 일본 언론이 연일 이런 우려를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중국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 같다.
시진핑 주석도 사드(THAAD) 문제로 한국을 무척이나 어렵게 했다.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한 요격용이므로 위협이 사라지면 철거될 것”이라고 하소연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거의 모든 한국 상품에 대해 무차별적인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고, 관광과 한류 공연까지도 막아 한국을 아예 고사(枯死)시키려 들었다. 결국 ‘사드 추가 배치 불가’를 포함한 3불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한 발 물러섰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1637년 청(淸) 태종에 의한 ‘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런 시진핑이 2017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선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글로벌 자유무역과 투자를 권장하며 보호주의를 견결히 반대합니다··· 모든 국가는 대소의 차이, 강약의 차이, 빈부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국제사회의 평등한 일원으로서 다 같이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이 말의 진정성이 얼마나 한국인의 가슴에 파고들었을지 의문이다.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미국엔 한마디도 못한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사드의 소유·운용자인 미국엔 항의 한 번 못했고, 아베 총리는 G20 회의를 앞두고 트럼프로부터 방위비 분담에 관해 모욕에 가까운 말을 들었지만 역시 대꾸도 못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만한 나라에는 함부로 대한다. 그래서야 어떻게 대국 대접을 받겠는가.
일본은 오매불망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다시 세상의 중심(中華)이 되려고 한다. 그 꿈을 이루려면 우선 주변국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맹자(孟子)의 이대사소(以大事小), 즉 큰 나라도 작은 나라를 섬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그나저나 메르켈이 그만두면 유럽은, 아니 세계는 누가 지키지? 트럼프? 아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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