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아베와 시진핑, '정글의 게임'에 한국을 초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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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9-07-0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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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역보복'으로 둔갑한 이웃국의 빗나간 정치외교학… 이 나라가 동네북된 까닭

[사진=AP·연합뉴스]




"자유주의 세계질서여, 고이 잠들라."
2018년 3월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장이 쓴 칼럼의 제목은 글로벌경제에 던진 음산한 부고(訃告)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두 번의 참혹한 세계전쟁 경험을 거울 삼아 이룩해놓은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죽였다는 얘기다.

6월 28일부터 이틀간 열린 G20 정상회의는 참으로 역설적인 회의였다. 자유주의 질서를 천명하는 이 모임의 이번 관심사는 오직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반(反)자유주의적 충돌의 '협상'이었다. 정상들이 채택한 공동성명에는 "보호무역에 반대한다"는 상투적 문구마저 쓰지 못했다. 트럼프의 눈치를 본 까닭이다. 

세계 경제 이슈의 가늠자가 되어온 G20 회의 하루 만에, 트럼프가 주도한 판문점 북·미 회담이 뉴스를 휘몰아가버렸다. 자유시장경제의 합창은 하루도 못 가서 허공에 흩어졌다. 거기에다 오사카의 역설은 또 있었다. 이 회의의 호스트였던 일본 아베 총리는 스스로의 주도로 함께 외쳤던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원칙을 사흘 만에 뒤엎는 발표를 한다. 7월 1일 일본 정부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TV제품에 들어가는 첨단소재 세 가지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밝힌다. 무역제재는 미국과 중국의 단골메뉴였기에 일본의 이런 수출 압박은 낯설고 당혹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국가침탈 행위를 철회했던 1945년 이후, 36년간의 식민지배로 한국이 입은 고통과 손실에 대해 이 나라가 기본적으로 취했던 태도는 ‘통절한 반성’이었다. 2013년 아베 신조 총리는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국제교류회 만찬에서 “우리나라는 과거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전후 일본의 원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19년 7월 아베는 그 ‘원점’을 식언(食言)해 버리고 역사적 문제에 대한 불화와 이견을 힘으로 밀어버리겠다는 기세로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듯한 무역제재의 칼을 꺼냈다.

일본의 이 ‘압박 공세’는 현재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을 학습한 결과로 보인다. 그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화웨이와 사드에 대한 ‘입장’을 고민하느라 전전긍긍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정치적 이슈를 비롯한 비경제적 이슈가 무역보복이라는 무기로 옮겨가는 사태를 지켜보며,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 행위의 악령을 같은 방식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이것은 미·중의 보호무역주의와는 또 다른 국가이기주의의 ‘변종’이다. 역사적 과오를 경제적 실력으로 무마하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본색을 드러낸 비상식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001년 미국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 받아들인다. 이 공산주의 국가를 자유주의 무역질서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 만들려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도약했고, 사회주의 시스템과 결합한 경제 체제와 거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국력을 급속도로 불려왔다. 이 국가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와는 다른 질서를 꿈꾸며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떠올랐고, 미·중은 신국제질서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상황이 됐다.

미국이 집요하게 중국을 공격하는 까닭은 이미 '정글'화하고 있는 세계시장에서의 단일패권을 유지함으로써 국익을 확장하기 위함이다. 중국이 그들의 코밑인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한 미국에 대해 직접적인 항의를 하는 대신,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과 현지 진출기업 옥죄기를 감행한 일은, 이 나라가 자유시장 가치에 대한 신념이 희박하다는 걸 웅변했다. 정치적 이슈를 경제 보복으로 치환한 그들의 게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오사카에서 시진핑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다시 언급한 '사드배치 문제'는 분위기를 얼어붙게 했다. 

아베와 시진핑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의 대시는 지금 너무 거칠고 이기적이다. 교역 상대로서의 존중과 시장질서의 가치 따위는 아랑곳 않는 것 같다. 우리 외교가 대북(對北) 성과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나머지, 일본·중국과 지녀야 할 최소한의 관계 정서를 놓쳐버린 것은 아닌가. 과거 국가적 가학행위로 역사의 죄를 지은 나라의 총리는 무역 보복으로 '잔존하는 불평'들을 눌러버리려 한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나라의 주석은 미국에다 항의해야 할 사안을 우리 측에 압박하는 방식으로 줄기차게 자국 진출 기업들을 흔들어댄다. 

본지는 일본과 중국의 정치적인 '교역 갑질'을 집중 리뷰 방식으로 다룬다. 그 교역 갑질에 한국은 동네북이 됐다. 두들겨맞는 자도 한심하지만, 그런 힘쓰기를 실력으로 착각하는 쪽도 오래 웃고 있긴 어렵다. 상식과 정도(正道)가 사라진 국제질서 속에선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린 지난 시대의 피폐한 역사에서 배웠다. 노다니엘 대표(아시아리스크 모니터)는 '한국과 일본의 정의관과 규범관의 차이'를 중심으로 문제의 핵심을 분석했고, 이재호 교수(극동대)는 '아베와 시진핑의 자기모순적인 행태'를 파헤쳤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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