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반도체 소재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4일 일본이 핵심 반도체 소재 품목 수출을 규제하고 나선 데 대한 업계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초기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소재뿐 아니라 부품, 장비까지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중소업체들까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규제 대상이 된 3개 소재 외에도 당장 일본에서 사오는 소재만 수백종에 이른다"며 "대체 소재를 개발하고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부품, 장비 등에 대해 함께 대안 마련에 나서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이 규제하고 나선 품목은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제조에 쓰이는 필수 소재로 포토레지스트(감광액)와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스마트폰·올레드 TV용 폴리이미드다.
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올들어 5월까지 해당 소재의 대(對)일본 수입 의존도는 레지스트와 에칭가스가 각각 91.9%, 43.9%였고, 올레드 디스플레이용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경우 93.7%에 달했다.
특히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커 당장 가장 위협적인 품목으로 꼽힌다. 포토레지스트는 웨이퍼에 회로를 인쇄하는 노광 공정에 사용된다. 일부 국내 기업이 만들고는 있지만 당장 일본 제품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에칭가스의 경우에는 2010년경 한국에도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구미 불산사고 이후 시민단체의 반대 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폴리이미드는 SKC나 코오롱 인더스트리 등이 생산하는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
소재뿐 아니라 장비 역시 해외 의존도가 높다. 노광, 식각, 증착 등 반도체 핵심 공정에 필요한 장비의 80% 이상을 해외 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 점유율은 3.6%에 불과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반도체 장비 시장 국가별 점유율은 미국이 44.7%로 1위이며, 일본이 28.2%로 2위를 차지했다.
◆삼성 견제 목표···양측 모두 피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본산 소재와 장비 등을 구입하는 최대 고객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극단적인 조치가 나왔다는 데 대해 당황하는 입장이다.
한 전자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은 사전에 제재 움직임을 파악하고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하지만 사태가 장기적으로 갈 경우 국내뿐 아니라 일본기업의 피해도 막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반도체 공급이 어려워지면 일본기업들의 스마트폰, TV 생산도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 세계 부품 공급망까지 무너질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최근,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 달성을 목표로 내건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제재가 삼성전자를 정면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와 업계는 지난 3일 긴급 회동을 열고 해법 모색에 나서기도 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장(부회장)은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과학기술연차대회'에 참석해 전날 회동에 대해 "힘을 모아야 한다"며 "긴밀하게 분야별로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국내 반도체, TV 산업은 전체 수출에서 큰 비중을 담당해 향후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당장은 소재 국산화가 어렵더라도 장기적 전략을 가져가면서 한·일 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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