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대통령 바뀔 때 마다 성장전략 제시했던 손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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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IT과학부 부장
입력 2019-07-0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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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그래픽] 

소프트뱅크는 정보혁명의 흐름을 따라 주력사업을 바꿔가며 성장한 IT기업이다. PC소프트웨어 도매업에서 인터넷·브로드밴드(초고속인터넷), 이동통신으로 사업영역을 확장시키며 회사를 키워왔는데, 미래를 내다보는 손정의(孫正義) 회장의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81년 일본소프트뱅크를 창업한 손 회장은 1998년 이후, 줄곧 한국 대통령을 만나 성장전략을 제시해왔다. 손 회장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을 찾아 성장전략을 제시하게 된 것은 1999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함께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자신의 진언을 받아들인 한국이 IT강국으로 거듭났다는 실적이 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지금도 정치인들과 IT정책을 논의하거나 강연할 때 "성장전략은 하나로 집중시키는 것"이라며 브로드밴드로 IT강국이 된 한국을 성공사례로 소개한다.   

 

지난 4일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연합뉴스) 


◆ 브로드밴드로 나라를 구하라

“한국은 위기입니다.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지혜를 주십시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0년대 후반 IMF 위기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던 한국을 구제하기 위한 조언을 듣기 위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이렇게 물었다.

손 회장은 “방법은 3가지 있다”고 운을 뗀 뒤 “첫째도 브로드밴드,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 전 대통령은 옆에 앉아있던 게이츠 회장에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게이츠 회장은 “100% 찬성”이라며 손 회장의 조언을 거들었다.

김 전 대통령은 “손 회장과 게이츠 회장 두 사람이 하라면 반드시 하겠다. 약속한다. 그런데 브로드밴드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자, 손 회장은 “한 마디로 초고속인터넷이라고 하는데, 대통령께서도 인터넷은 아시죠?”라고 되물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고 김 전 대통령이 대답했다.

손 회장은 “대통령께서 알고 계시는 그 인터넷을 고속으로 바꾸는 작업이지만, 단순히 고속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1000배 속도를 높이는 것이 바로 브로드밴드”라고 말했다.

당시 인터넷 보급률은 미국이 1위, 일본이 2위로 한국의 출발은 늦은 상태였지만, 손 회장과 게이츠 회장의 진언을 받아들인 김 전 대통령은 ‘IT기본법’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브로드밴드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미국과 일본이 밀려나 한국이 1위를 차지하게 됐다. 

 

1999년 12월 21일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을 접견했다.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 세계 최고 한국 온라인게임 밀어줘야

“초고속인터넷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온라인게임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게임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해야 할 때입니다.”

2003년 7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만난 손 회장은 경쟁력이 있는 온라인게임을 지원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이 자리에서 손 회장은 한국 온라인게임의 우수성과 가능성도 설명했다. 손 회장은 “현재 일본 국내에서 인기있는 온라인게임 30개 중 20개가 한국에서 개발됐으며, 그중 1, 2위가 한국제품”이라고 소개했다. 또, 손 회장은 “일본 청소년들이 한국게임 페스티벌을 열고, 한글판 온라인게임의 일본어 번역본 출시를 기다리지 못해 사전을 손에 들고 게임을 즐길 정도”라고 덧붙였다.

당시 일본 국내 게임시장은 플레이스테이션 등 콘솔게임이 90%를 차지했다. 손 회장은 콘솔게임 중심의 일본 게임시장이 초고속인터넷의 보급에 따라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온라인게임이 큰 역할을 다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2011년 6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접견했다. (사진제공=청와대) 


◆ 신재생에너지 확산시키자

손정의 회장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을 소프트뱅크 도쿄본사 사장실에서 직접 경험했다.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때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계기였다. 원전을 대체할 안전한 재생에너지가 필요해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아시아 각국의 송전망을 연결해 재생에너지를 사고파는 ‘아시아 슈퍼그리드’를 구상했다. 이를 위해 자연에너지재단을 발족시킬 계획을 세웠는데, 눈을 돌려보니 이명박 정권이 ‘녹색성장’을 추진하고 있었다. 손 회장이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많다는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2011년과 2012년에 열린 ‘글로벌 녹색성장 서밋’에 기조강연자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손 회장은 ‘아시아 슈퍼그리드’ 구상을 이 전 대통령에게 소개하면서 “몽골에서 풍력으로 만든 전력을 한국에 들여올 수 있는데, 1㎾(킬로와트)당 5센트의 비용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때 이 전 대통령은 “정말 5센트로 들여올 수 있나?”라고 되물으며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2011년 6월, 손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접견한 자리에서 몽골 고비사막의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인 '고비테크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손 회장은 "이 대통령의 녹색성장 비전에 대해 공감한다"며 "한국과 일본, 중국이 힘을 모아 고비사막의 태양열 등 자연에너지와 녹색기술을 활용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추진하자"고 건의했다.

이 대통령은 "신재생 에너지 확산을 위해 국제적 협력이 중요하고, 앞선 기술을 가진 일본의 전향적 태도가 중요하다"며 "동북아 에너지 협력을 위해 한국 정부와 기업은 능동적으로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이후 손 회장과 한전의 접촉이 이뤄지면서 부산과 규슈(九州)를 잇는 송전망 구축 사업이 속도를 내는 듯했다.  

하지만 원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손 회장과 원전을 수출 중점분야로 육성하던 이 전 대통령과의 간극을 끝내 좁히지 못해 '고비테크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9월 청와대를 방문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 향후 10년간 한국에 5조원 투자

2016년 9월 청와대를 찾은 손정의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향후 10년 이내에 사물인터넷(IoT), 인터넷, 인공지능(AI), 모바일, 스마트로봇, 전력 분야에서 5조를 목표로 한국에 투자하겠다”며 구체적인 금액까지 제시했다.

박 전 대통령은 “IoT, 인터넷, 인공지능 분야는 우리도 집중 육성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며 “한국기업과 소프트뱅크가 협력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어 창업과 스타트업 육성에 나섰던 박 전 대통령은 “손 회장은 2000년에 한국에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를 설립해 국내외 총 20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면서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쿠팡이 소형 택배차량과 관련된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규제개선으로 관련 애로가 해소될 것”이라며 선물을 안겨주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암홀딩스(ARM)가 IoT 분야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기업과 소프트뱅크가 협력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손 회장이 인수한 암홀딩스가 반도체설계 업체라는 점을 들어 “우리도 2000억원 규모의 반도체펀드를 조성하고 있는데, 소프트뱅크도 여기에 참여해 달라”고 제안했으며, 손 회장은 “연계 투자를 통해 신속히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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