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 12-15] 일제 통치지역의 무궁화는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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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19-07-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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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과 미국의 장미, 프랑스와 퀘벡의 백합, 일본과 한국의 무궁화 비교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만약 내가 마음대로 내 고국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일본을 선택할 것이다. 오, 축복받은 일본이여! 동방의 낙원이여!" <윤치호(애국가 작사자 겸 무궁화 도입자)>

"윤치호는 1893년 상하이에 잠복해 있던 그를 찾아온 남궁억과 의논해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정했으며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가사를 넣었다." <‘尹致昊’ 일본 위키피디아>

"참을 수 없이 낭자한 벌레들이 무궁화를 장식하고 꽃 속에 그득한 벌레 소리는 피리와 퉁소를 섞은 것 같다." <정약용, 『여유당전서』>

"야마구치(山口)현에서 무궁화를 이식했지만, 잘 자라지 않고 시들어 버렸다. 무궁화는 간단한 꽃이지만 토양이 맞아야 한다. 무궁화는 일본에 한한다." <松原益太, 『小学植物教材研究」, 1935>

"식민이란 뭔가? 한마디로 외국에 자기 나라 사람(民)을 심는 거다. 식민지에 자기 나라 나무(樹)를 심는 거는 당연지사다. 바보야! 이러지 않으려면 뭐 하려고 제국주의 하는가?" <강효백>


◆영국과 미국의 장미, 프랑스와 퀘벡의 백합, 일본과 한국의 무궁화

영국은 미국 동부 13개 식민지와 캐나다 영국령에 자국의 나라꽃 장미를 이식했다. 현재 미국의 동부 뉴욕 주와 조지아 주, 캐나다 앨버타 주의 주화(州花)는 장미다. 프랑스도 캐나다 프랑스령에 자국의 문양 백합을 이식했다. 현재 캐나다 퀘벡 주의 주화는 백합(Madonna lily)이다.

'부상(扶桑=무궁화 나무)국' 일본도 한국에 자국의 '속마음' 나라꽃 무궁화를 이식했다. 현재 한국의 나라꽃은 무궁화다.
미국 중남부의 오클라호마, 중북부의 노스다코타, 중서부의 아이오와 주화가 장미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장미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동부 13개 주 이외 북미 대륙에서 이미 널리 자생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 땅에 살고있는 미국인의 주류가 영국 이민자 후손으로 영어를 쓰고 있다. 그 무엇보다 미 연방은 국민 의사에 따라 민주적 절차를 거쳐 지난 1986년 장미를 미합중국의 나라꽃으로 선정했다.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1996년 캐나다 의회는 국민의 뜻에 따라 자국의 상징 식물을 영국의 장미에서 단풍잎으로 바꿨다. 캐나다 13개 주와 자치령마다 주화가 있는데 백합이 주화인 퀘벡 주민의 주류가 프랑스계로 프랑스어를 쓴. 장미가 주화인 앨버타주 주민의 주류가 영국계로 영어를 쓰고 있듯이.

그러나 한국의 무궁화는 미국의 장미나 캐나다의 백합과는 완전히 다르다.

한반도에 무궁화 자생지가 전혀 없는 데다가, 재배 가능 지역도 휴전선 이남이라는 비(非)지리성, 구한말 이전 한반도 시공에서는 극히 희귀한 비역사성, 나라꽃 지정 과정에 국민 의사가 일절 반영되지 않는 반(反)민주성, 한민족이 아닌 일본 민족의 특성을 반영하는 반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 땅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무궁화 이식의 동기는 장미와 백합과 비슷하더라도, 무궁화의 이식 과정과 결과는 장미와 백합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게 탈이다. 큰 탈이다.

무궁화 도입자 윤치호는 말했다. “‘내 나라’를 정할 수 있다면 일본을 선택하겠노라.”

'네이버 지식백과' 등 국내 무궁화 관련 온·오프라인 텍스트는 무궁화가 한국의 나라꽃이 된 경위를 윤치호와 남궁억과 상의해 결정한 것으로 적고 있다.

“남궁억(南宮檍)과 윤치호(尹致昊) 등은 서로 협의해 무궁화를 국화로 하자고 결의했다. 물론 이것은 이들 몇 사람 만의 독단적인 의견이 아니라 당시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을 집약했던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상희,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그러나 후반부 “이들 몇 사람만의 독단적인 의견이 아니라 당시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을 집약했던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는 책의 저자인 동화작가 겸 번역가가 국가상징 나라꽃에 감히 자기 멋대로의 ‘독단적 의견’을 집어넣은 완전한 허구다.

이는 윤치호의 자필 영문 일기와 관련 일본 문헌을 찾아보면 더 확실해진다.

"만약 내가 마음대로 ‘내 나라’를 정할 수 있다면 일본을 선택했을 것이다. 나는 지긋지긋한 냄새가 나는 중국이나 인종에 대한 편견 및 차별이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미국 또는 지긋지긋한 정권이 존재하는 한 조선에서도 살고 싶지 않다. 오, 축복 받은 일본이여! 동양의 낙원이여! 세계의 동산이여!" <1893년 11월 1일 도쿄에서, 윤치호 일기>

윤치호는 이 일기를 쓴 며칠 후인 1893년 11월 7일 배를 타고 상하이에 도착했다. 연이어 남궁억의 방문을 받았다.

남궁억은 조선을 상징할 국화를 결정하기 위해 상하이에 잠복해 있던 윤치호를 찾아왔다. 윤치호는 그때 남궁억과 의논해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정했으며 그로부터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가사를 넣었다. <일본 위키피디아 ‘尹致昊’>

◆일제의 점령지였던 말레이시아의 무궁화는 안녕하신가

지난 7월 5일 필자는 우리나라의 나라꽃 무궁화와 말레이시아 공식 나라꽃 무궁화(Hibiscus 부상화)를 현지 답사·고찰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동북부 사바 주로 날라왔다. 무궁화는 말레이시아 산과 들과 해변, 도시와 농촌, 거리와 공원, 관공서와 이슬람 사원 정원에 널려 있었다. 지폐 속에도, 셔츠와 원피스 투피스에도, 음료와 식품 포장에까지, 말레이시아인 일상 생활 속에 피어 있었다.

말레이시아 곳곳서 보이는 무궁화. (왼쪽부터) 무궁화 무늬셔츠, 지폐에 새겨진 무궁화 도안, 거리에 핀 무궁화, 해변에 떨어져 뒹구는 무궁화[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은 항복하기 전 말레이시아 전역을 1942년~1945년 통치했다. 비록 3년으로 말레이시아를 지배한 그 어떤 나라보다도 짧게 통치했지만, 더 잔인했다.  특히 중국에 대한 반감을 갖고있던 일본은 이 지역 중국인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중국인 뿐만 아니라 청년들은 태국을 거쳐 미얀마까지 이어지는 철로를 건설하는 데 동원됐다. 당시 많은 이들이 막노동에 영양 실조 등으로 희생돼 이 철로는 '죽음의 철로'라 불리게 됐다. 또한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식량도 제대로 보급하지 않아 경제난에 시달렸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30%이지만 경제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은 여전히 강했다. 말레이시아 화교 대부분은 중국 푸젠성 출신으로 조상 대대로 왜구의 침략에 못 견뎌 동남아 각지로 피난 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가 나라꽃으로 정해진 것과 일본 통치 3년간의 상관성은 없다. 말레이시아의 무궁화는 자기나라에 원래부터 전역에 널리 자생하는 꽃나무로 완전히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선정된 것이다.

◆일본 국내 식민지 홋카이도의 무궁화는 안녕하신가

따뜻한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 덕분일까. 열대성 내지 아열대 식물인 무궁화는 일본 혼슈 야마구치 현과 와카야마에 야생 군락지가 있고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 전역에 토착화된 꽃나무다.

놀랍게도 무궁화는 일본의 최북단인 설국 홋카이도의 호쿠토시(北斗市), 키요사토마찌(清里町), 소베스마찌(壮瞥町)의 상징 꽃이다.

(왼쪽부터) 홋카이도 도로변 무궁화 거리, 홋카이도 요사토 로고 무궁화, 홋카이도 소베스마찌의 꽃 무궁화[사진=강효백 교수]


그러나 사실은 홋카이도의 무궁화는 자생한 게 아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제에 의해 이식된 것이다. 홋카이도의 무궁화는 1886년 이토 히로부미 초대 총리가 홋카이도청을 개설해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족을 퇴거시키는 대신 본토의 일본인을 이주시키는 이른바 홋카이도 식민정책을 펼칠 때 본격적으로 식수된 것이다.

일본인의 이주는 원주민 아이누족에게는 토지 수탈과 강제 이주를 수반하는 것이어서 ‘일본에 의한 침략’이었다. 남한의 4분의 3의 면적이나 현(縣)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1개 도(道)로 뭉뚱그려진 홋카이도는 여전히 ‘일본의 국내 식민지’라는 견해도 있다.

◆일제가 이식한 한국의 무궁화는 여전히 안녕하신가

"야마구치 현(1)*에서 무궁화를 이식했지만, 잘 자라지 않고 시들어 버렸다. 무궁화는 간단한 꽃이지만 토양이 맞아야 한다. 무궁화는 일본에 한한다." <松原益太, 『小学植物教材研究」, 1935>

‘대일본제국’은 제국주의 대영제국이나 프랑스제국의 본을 받아 자국의 나라꽃 무궁화를 식민지 한국에 식수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한반도 강점 초기, 조선 총독부는 헌병과 일본인 관리를 동원해 암암리에 마을 입구마다 무궁화를 심었다. 그리고 차령산맥 이남에서만 재배 가능했던 무궁화를 조선총독부 식산국을 중심으로 영림청, 권업모범장, 농업시험장(농촌진흥청의 전신), 수원고등농림학교(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전신) 등 총독부 산하 기관들의 연구와 보급을 통해 황해도 이남까지 무궁화가 재배 가능한 북방한계선을 확장하도록 품종을 개발했다.

"참을 수 없이 낭자한 벌레들이 무궁화를 장식하고 꽃 속에 그득한 벌레 소리는 피리와 퉁소를 섞은 것 같다. 무궁화는 천박한 자질에 활기도 없어 빈 골짜기에 버려지리.(不禁狼藉蟲飾腹 總總已似芋混籟 薄質消沈委空谷)."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진딧물도 많아 어린아이가 무궁화를 가지고 노는 걸 금지해야 한다. 병과 학질에 걸리게 된다(小兒忌弄 令病瘧). 고로 무궁화를 학질꽃(瘧子花)이라 한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그러나 정약용, 이규경 등 19세기 조선시대 선각자들도 이미 선각했듯, 무궁화는 한국 토양에 맞지 않았다. 이식된 조직이 이식자의 면역체계에 의해 거부돼 조직이 파괴되는 현상, ‘조직이식 거부반응’인가.

즉, 무궁화를 억지로 한반도에 심긴 심더라도 잘 자라지 않고 시들시들하다가 요절하고 말았다. 실제로 경희대학교 캠퍼스도 봄·여름·가을 할 것 없이 각종 꽃들이 만발한다. 하지만 무궁화가 한창이어야 할 7월 현재 캠퍼스내 그 어디에도 무궁화는 볼 수 없다. 왜 그럴까.

한 원로 조경학 교수에게 가르침을 구했던 바, 무궁화를 유독 애착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무궁화 나무 수십 그루를 캠퍼스 내 곳곳에 심어 놓고 정성을 기울여 가꾸었지만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고사했다고 한다.

무궁화 관련 국내 뉴스나 온·오프라인 텍스트들은 “일제가 무궁화를 볼품없는 지저분한 꽃이라고 경멸하여 비하시켰으며, 어린 아이들에게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난다느니 심지어 눈이 먼다고까지 하여 멀리하도록 가르쳤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팩트와 픽션을 1대 9로 혼합한 ‘팩션’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에 이식된 무궁화는 일본에서의 무궁화와 달리 진딧물 등 온갖 곤충들이 잘 끼고 학질 안질 등 각종 병균을 옮기는 일종의 비위생 유해 식물이었다. 일제 관헌이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난다고 경고한 것은 무궁화 탄압이 아니라 고육책이자 계도 차원이었다.

또한 1919년 3·1 운동 여파로 시작된 ‘문화통치’ 이후 일제는 무궁화 이식 정책 역시 ‘문화적’으로 전환했다.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무궁화를 심는 대신, 한국인의 손으로 무궁화를 심게 하는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남에게 시켜서 누굴 죽인다는 차도살인(借刀殺人) 책략을 구사했다.

즉, 일본 민간의 나라꽃격 벚꽃을 강제로 심게 하는 대신, 무궁화 식재를 견제하는 척 해서 한국인의 저항심을 도발시켰다. 그리고 이를 오히려 한국 고유의 나라꽃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고도의 노회 간교한 심리전을 펼쳤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의심 없이 인식하고 있으니 참으로 너무 깊고 오래가는 일제의 심리전의 약발이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황실화 오얏꽃(李花)을 폐지하고 무궁화를 한국의 국화격으로 신분세탁 이식 작업했듯, 1931년 만주국을 건국하면서 대청제국의 황실화 모란을 폐지하는 대신 살구꽃(杏花)을 만주국의 국화격으로 설정 보급했다. 일제가 만주국의 나라꽃을 살구꽃으로 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어서 계속)


◆◇◆◇◆◇◆◇미주

(1)* 일본 역대 日총리중 7년이상 장기집권자는 4명 뿐이다. 이들의 두 가지 공통점은 첫째, 무궁화 군락지 야마구치현 출신이고, 둘째, 천양무궁(일왕영토의 무궁확장)에 광분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가쓰라 다로(을사늑약, 한국병탄) *사토 에이사쿠 (오키나와 재점령) *아베 신조(독도와 동해, 일영토표기 망동, 한일무역전쟁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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