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가족과 오랜 고민 끝에 군대를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유승준(44)씨가 한국 국적 포기 신청한 지 17년 만에 ‘유 씨의 비자발급 거부는 위법이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유 씨는 2002년 처음 한국 입국을 거부당할 때 이렇게 오래 비난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해외에서 연예 활동을 하며 꾸준히 한국의 문을 두드려왔다. 그러나 유 씨가 문을 두드릴 때마다 대중들은 그를 “스티브 유”라고 부르며 마음을 더 닫았다.
▲신체검사 받는 대한건아 ‘유승준’에서 미국인 ‘스티브 유’로
2000년대 초반까지 방송계는 유승준 열풍이었다. 탁월한 안무 실력으로 ‘가위’, ‘나나나’, ‘찾길 바래’ 등 발매하는 앨범마다 히트쳤고, 음악 프로그램 차트 1위를 휩쓸었다. 여기에 그는 예능감도 갖춰 당시 각종 예능 프로그램 섭외 1순위로 뽑혔다. 공익을 위해 금연 홍보대사 등 다양한 활동도 앞장서 대중들의 인기가 절정이었다.
2001년 8월 유 씨가 징병신체검사를 받을 때 병무청에 100여 명의 팬들과 취재진이 몰릴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았다. 당시 유 씨는 허리디스크 수술 병력으로 공익요원 판정을 받았으나, 병역회피 논란은 없었다.
논란은 2002년 1월 18일 유 씨가 입대를 앞두고 돌연 미국 시민권 취득을 신청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시작됐다. 유 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법원에서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고, 한국총영사관에 국적 포기 신청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 살고 있고 해외에서 가수 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에 미국 시민권을 신청했다”며 “병역 문제와 관련해 팬들에게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된 것 같아 미안하다”고 밝혔다. 보도 이후 팬을 포함한 전 국민의 유 씨를 향한 비난이 빗발쳤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유승준을 비난하는 게시글이 쏟아졌다.
법무부와 병무청은 유 씨의 행동에 곧바로 대처했다. 유 씨는 2002년 2월 2일 입국을 시도했으나, 인천공항에서 법무부에게 입국금지를 통보받고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병무청은 국외이주제도를 악용한 병역기피를 막기 위해 곧바로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당시 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이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당혹감을 표현하고 “시민권 취득 목적이 병역을 회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후 2003년 6월 유 씨는 예비 장인의 상을 치르기 위해 3일간 입국허가를 받고 한 차례 입국했다. 이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밟은 한국 땅이었다.
▲스티브 유로서 제2의 삶
한국 추방 후 그는 유승준이 아닌 미국인 스티브 유로서 삶을 살아갔다. 미국에서 결혼하고 새 앨범도 발매했다. 한류가수로서 중국과 일본 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는 특히 홍콩 배우 성룡과 친분을 과시하며, 홍콩 영화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한국 관객의 차가운 반응에 흥행은 참패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방한을 시도했다. 일각에선 ‘병역의무 나이 35세를 넘긴 유 씨를 법무부가 입국금지 해제할 것이다’는 말이 나왔다. 이에 관해 병무청은 곧바로 검토된 사항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이듬해 유 씨는 인터넷 개인방송을 통해 심경을 고백했다. 방송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린 유 씨를 향한 여론이 돌아서나 병무청의 자세는 여전히 단호했다.
당시 김용두 병무청 부대변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브 유는 자신이 버린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신의 심정을 밝힐 자격이 없다”며 “기회만 있으면 국내 복귀하고 싶다는 뜻을 언론을 통해 밝히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을 가볍게 생각하고 우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판사 앞에 서게 된 유승준
유 씨는 2015년 9월 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총영사관에 한국 비자(F-4)를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같은 해 11월 법원에 비자 발급을 거부한 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총영사를 상대로 비자 발급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그는 입국이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소송 대리는 한 대형 법무법인이 맡아 진행했다.
재외동포법 5조 2항은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자’에게는 F-4 비자를 발급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 씨는 자신의 미국 시민권 취득 경위에 대해 “경제적 이유 등 피치 못할 사정에 따른 것일 뿐 병역 기피 목적은 아니다”는 입장을 나타내면서 비자 발급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은 1심에서 “군 복무를 하지 않기 위해서 대한민국 국적을 버린 스티브 유가 국내로 돌아올 경우 병역 기피 풍조가 만연하는 등 군 사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대한민국 국군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티브 유의 입국은 허락하기 힘들다”고 밝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유 씨는 포기 않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같은 이유로 기각됐고, 판결은 대법원까지 갔다.
11일 오전 대법원은 “법무부 장관의 입국금지결정을 유일한 이유로 사증발급 거부처분은 피고가 자신의 법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재외동포 사증발급 거부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해 원심을 뒤엎었다.
대법원은 판결 근거로 비자발급 거부 처분의 행정 절차에 잘못을 들었다. 대법원은 “다른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13년 7개월 전 입국금지 결정 만으로 사증발급을 거부한 것은 위법”이라며 “사증발급 거부처분의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행정절차법이 적용돼 처분서의 작성과 교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유 씨는 17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8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의하면 유승준 입국을 허락하면 안된다는 입장이 68.8%로 여론은 여전히 그에게 차갑다.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다”는 유 씨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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