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중 '5G표준' 먹겠다…화웨이전쟁의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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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논설고문
입력 2019-07-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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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4차혁명 패권 가를 '국제표준', 트럼프도 시진핑도 "양보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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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던 1789년에 또 다른 혁명이 태동하고 있었다. 도량형 단위를 통일해 이를 전 세계로 확산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혁명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선 무려 25만여 가지 길이·부피·무게 단위가 쓰이고 있어 혼란이 극심했다.
혁명을 통해 집권한 국민의회는 평등하고 보편적인 사회건설을 위해 길이 부피 질량 등이 하나로 연결된 새로운 단위체계를 만들어낼 것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주문했다. 과학자들은 고심 끝에 십진법에 기초하되 지구의 둘레를 바탕으로 길이의 단위를 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지구의 둘레는 혁명의 대의와도 잘 들어맞았고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을 위한’ 표준단위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1792년 북으로는 덩케르크, 남으로는 바르셀로나까지 이어지는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 측정팀이 파리를 출발했다. 한 팀은 남쪽, 다른 팀은 북쪽으로 길을 떠나 돌아오는 데까지 6년이 걸렸다. 다음해인 1799년 측정자료를 바탕으로 ‘지구의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의 1000만분의 1을 1미터(m)로 정하고 길이의 표준단위로 삼았다.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혁신적 측정기기가 여럿 선보였지만 각국의 척도가 달라 우수성을 비교하기 힘들었다. 프랑스는 1869년 미터법 홍보를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했고 25개 참가국 중 중남미 8개국이 미터법을 채택했다. 1875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는 17개국이 ‘미터협약’에 서명했고 1889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제1차 국제도량형총회에 참석한 18개국 대표는 ‘미터협약’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90%의 백금과 10%의 이리듐 합금으로 제작된 미터원기와 킬로그램원기는 국제표준으로 등극했다.
미터법의 국제표준화는 본초자오선 유치 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한 프랑스의 설욕전이기도 했다. 19세기 말 본초자오선의 통일은 도량형의 통일 못지않게 긴요하고 절박했다. 국가별로 표준 시간이 단 0.1초만 차이가 나도, 철도와 전신의 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심각한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1880년까지만 해도 최소 14개의 각기 다른 기준 자오선이 정식으로 사용되었다. 시간의 표준이 되는 기준 자오선을 자국 수도를 지나는 자오선으로 삼으려는 경쟁은 영국 미국 프랑스 등 당대 강대국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1884년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의 제창으로 워싱턴 D.C.에서 국제자오선 회의가 열렸다. 25개 참가국 가운데 22개국이 동의해 그리니치 기준의 본초자오선이 확정되었고 전 세계는 그리니치 표준시라는 공통된 시간 기준을 갖게 되었다. 영국은 18세기 이후 세계적인 해운국가로 부상했다. 당시 세계 선박의 72%가 그리니치 자오선을 경도의 기준으로 한 해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표결에 기권했던 프랑스는 1911년이 되어서야 파리 자오선을 포기했다.
이렇게 하여 영국은 시간, 프랑스는 공간의 국제 표준을 나눠 갖게 되었다. 국제 표준은 주도한 국가의 상징 자본이자 새롭게 열리는 시장의 선점을 약속하는 보증수표였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발명에 따른 기계화, 2차 산업혁명은 전기 보급에 따른 대량생산과 자동화,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인터넷 등장에 의한 디지털 정보화로 요약할 수 있다. 도량형과 시간의 표준은 영국과 프랑스를 1차 산업혁명의 승자로 만들었고 전기 관련 표준은 2차 산업혁명, 통신기술 표준은 3차 산업혁명의 확산에 공헌하며 미국을 세계 최강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새롭게 도래한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산업의 융복합화, 초연결화, 초지능화로 요약된다. 2차 산업혁명까지는 단위의 국제표준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나 성능을 보장하는 기준 역할을 해왔다면, 3차부터는 통신기술의 국제표준, 특히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네트워크 기술의 국제표준이 새로운 시장을 가동하는 핵심 동력이자 핵심 인프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산업으로 꼽히는 인공지능·가상증강현실· 무인 자동차· 스마트시티의 공통점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오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을 구현하려면 매순간 생성되는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연결해주는 초고속 데이터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5세대 이동통신을 뜻하는 5G의 정식 명칭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정한 ‘IMT-2020’. △기존 4G 대비 20배 빠른 ‘초고속’ △통신 지연이 10배 짧아지는 ‘초저지연’ △연결 기기가 10배 많아지는 ‘초연결’ 등의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5G의 특징은 제동 거리와 제동 시간 단축이 생명인 자율주행 자동차, 생명을 다루는 원격 로봇 수술,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인공지능의 상용화는 물론, 로봇지상군, 인공지능 전투원, 무인전투기 등 최첨단 무기체계를 가동하는 중요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5G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 핵심 표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5G의 중요 지표는 관련 특허건수 및 기지국과 단말기(스마트폰) 매출이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2018년 중국 IT기업인 화웨이의 국제 특허 출원 건수가 5405건으로 2위 미쓰비시(2812건)의 두 배에 가깝다. 더욱이 화웨이가 출원한 특허 대부분이 5G 관련 기술이라고 한다. 그 뒤가 인텔, 퀄컴, 중흥, 삼성의 순이다. 화웨이는 2018년 기지국의 세계 매출액 점유율에서도 스웨덴의 에릭슨(29%)에 이어 2위에 올랐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14.7%로 삼성전자(20.8%), 애플(14.9%)의 뒤를 바싹 쫓고 있다.
기술은 수월성을 추구하지만 표준은 보편성을 추구한다. 산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네트워크 경제, 보편성과 상호운용성이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 경제에서는 특허기술이 아니라 개방된 표준기술이 시장의 승자가 된다.
미·중 무역전쟁은 결국 5G 국제표준을 놓고 다투는 패권전쟁이다.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의 각축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는 국제 표준(Global Standard)이 20세기의 연장인 ‘아메리칸 스탠더드(American Standard)’가 될지,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인 ‘차이니즈 스탠더드(China Standard)’가 될지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기도 하다. 두 진영 사이에 낀 한국이 궁극적으로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논설고문 · 건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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