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초기 중국은 낙후한 나라였다. 중국은 과학기술, 군사력, 경제력, 인적자원 등 전반적으로 선진국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가 간의 마찰과 견제를 피하면서도 국력을 제고하기 위해 도광양회의 전략을 채택했다. 덕분에 중국은 선진국 견제를 받지 않고 기술과 자본을 도입해 급속한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었다.
덩샤오핑은 ‘100년간 도광양회의 기조를 유지하라’고 특별히 당부했으나, 1990년대 들어와서 장쩌민(江澤民)의 책임대국론(責任大國論)과 유소작위(有所作为), 후진타오(胡錦濤)의 화평굴기(和平崛起)를 거쳐 시진핑(習近平)에 와서 중화민족의 부흥을 들고 나오면서 도광양회의 기조는 폐기됐다.
중국이 철저히 도광양회 전략으로 실력을 기르는 데 치중하고, 10개 첨단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겠다는 ‘중국제조 2025’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등 중국몽(中國夢)을 내부적으로만 추진하되 겉으로 요란하게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미·중 무역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경제는 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이라고는 하지만, 구조 면에서 ‘글로벌 분업’과 국제무역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 정세 변동의 영향을 직접 받아 취약하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장비나 소프트웨어 및 원부자재는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으로부터 수입을 해야만 한다.
최근 정부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헬스, 미래차 산업을 중점 지원해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보도는 경쟁관계에 있는 기술선진국을 자극하고 경계심을 유발하는 비전략적인 자기 자랑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안보 또한 미·중·러·일의 열강이 대립하는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어 불안정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자주적인 역량을 확보하고 강대국과 '맞짱'을 뜰 정도의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선진국 국민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품격을 가질 때까지, 도광양회를 국가운영의 기조로 삼았으면 한다. 우리 자체적으로, 독립·주체적으로 국가의 미래 목표와 전략을 설정하고 추진하자는 말이다.
오랫동안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눈치만 보면서 종속적인 삶을 살았던 역사를 반성하고, 국가적으로 새롭고 획기적인 기풍을 세워야 한다. 당장 참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냉정하게 인내하면서 힘과 실력 그리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일본은 원자탄을 맞고도 미국을 원수가 아닌 배움의 대상으로 삼아 국력을 축적해 미국의 우방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우리는 마땅히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감정적으로 밉다고 입으로 반일과 반미를 외친다고 해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 가슴속에 담은 치욕의 아픔을 잊지 않으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도광양회를 실천하는 데 유용한 덕목을 꼽으라면, 삼성그룹의 창업자 고(故) 이병철 회장이 자녀들에게 가르친 ‘목계지덕(木鷄之德)'을 들 수 있다.
목계지덕은 장자(莊子)의 달생편(達生篇)에 나오는 고사다. 투계용 닭을 훈련시키는 과정을 통해 살아있는 닭이 마치 나무로 깎은 닭과 같은 정도의 평정을 유지하도록 훈련한 것을 말한다. 장자는 이 고사에서 교만함을 버리고, 상대의 언행에 대해 공격하지 않으며,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도광양회의 추진은 인내와 겸손 그리고 지식인 참여가 필수다. 자잘한 도전이나 비난은 거들떠보지도 말고 이슈화시켜서도 곤란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목매는 의식도 많이 고쳐져야 한다.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국익에 대한 전략적인 고려 없이 장단점을 까발리는 언론들의 행태도 개선돼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난을 받는 부류인 정치가도 자신의 이익이나 당리당략을 나라의 운명보다 우선시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법의 집행을 계급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사법기관과 권력자들의 탈법적 행위도 시정이 시급하다.
원대한 꿈이나 이상을 가진 사람은 작은 일이나 지엽적인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잘난 척하지 않고 매우 겸손하다. 우리나라가 최근 일본과 싸움이 한판 붙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무역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임진왜란과 구한말 일본침략 역사를 되돌아보면 감정적으로는 용서가 되지 않지만, 일본과 정면으로 대적하기에는 우리의 힘이 많이 모자란다.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어떠한 경쟁일지라도 지면 분한 게 우리의 정서다. 분함을 가슴에 새기고 '속 좁은 일본(小日本)'이 싸움을 걸어와도 극일(克日)할 실력을 쌓을 때까지 곁눈길조차 주지 않고, 도광양회 정신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멋진 국민들이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조평규 전 중국 연달그룹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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