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튼우즈 75주년..."국익 보호 최선책은 국제협력" 교훈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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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9-07-2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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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 브레튼우즈협정 서명 75주년...전문가들 "'브레튼우즈 교훈' 되새겨야"

  • 트럼프 일방주의 국제공조 위협...'브레튼우즈 쌍둥이' IMF·세계은행도 위기

"우리는 우리의 국가이익을 보호하는 가장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국제협력, 즉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단결된 노력을 통한 것임을 깨달았다."

1944년 7월 22일,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던 헨리 모겐소가 브레튼우즈 회의 폐막 연설에서 한 말이다. 의장으로 회의를 이끈 그는 이 깨달음이 제2차 세계대전의 큰 교훈이고, 전 지구인이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된 당대 삶이 주는 위대한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1944년 7월 1일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있는 마운트워싱턴호텔에 44개 동맹국 대표단 730명이 집결했다. 열띤 논의를 벌인 각국 대표들은 22일 만에 마침내 브레튼우즈 협정에 서명한다.

모겐소의 말대로 브레튼우즈 협정의 기본이념은 국제협력으로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30년대 대공황 속에 일어난 무역전쟁, 나치즘과 파시즘을 비롯한 극단주의의 부상, 2차 세계대전 등의 악몽에서 벗어나 세계 경제 시스템을 복원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금 1온스의 가격을 35달러로 고정한 금환본위제에 따른 환율 안정 아래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71년 이른바 '닉슨 쇼크'로 사실상 무너지고 만다.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다. 누적된 무역적자로 고전하던 미국이 더 이상 금을 달러로 바꿔줄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브레튼우즈 체제의 기본이념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라는 '브레튼우즈 쌍둥이'를 통해 계승됐다. 1948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이어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는 자유무역질서를 떠받쳤다. 세계은행을 모델로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이 출범했고 선진국 모임인 주요 7개국(G7),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이 두루 참여한 주요 20개국(G20) 같은 국가협의체도 국제협력을 통한 공동이익 실현이라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이념을 공유했다. 아울러 달러는 여전히 세계 기축통화로 글로벌 금융·통화질서를 주도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브레튼우즈 75주년 기념 콘퍼런스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앞줄 왼쪽부터), 장 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데이비드 립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 브루노 르 메이르 프랑스 재무장관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브레튼우즈 협정의 이념은 최근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경제 칼럼니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2017년 1월 20일)를 모겐소의 브레튼우즈 회의 폐막 연설과 대비시켰다.

"우리 제품을 만들고, 우리 기업을 훔치고, 우리 일자리를 파괴하는 다른 나라들의 만행으로부터 우리 국경을 지켜야 한다. 보호(주의)가 위대한 번영과 힘으로 인도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유세 때부터 보호무역을 주장했다. 주요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재앙' 같다고 비판하더니, 취임하자마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반무역 공세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FTA 등을 뜯어고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며 자유무역질서를 흔들고 있다.

최근 시대 분위기는 브레튼우즈 협정을 탄생시킨 시절만큼이나 혼란스럽다. 미국발 무역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각국에서 보호주의, 분열을 조장하는 포퓰리즘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게 마치 '3차 세계대전'의 전운을 보는 듯하다는 경고도 들린다. 그 사이 IMF, 세계은행, WTO를 비롯한 국제기구는 물론 세계 경제·안보 지형을 좌우하는 국가들의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G20 정상회의는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세계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의 고립주의와 일방주의로 세계가 'G-제로' 구도로 재편돼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G-제로'는 미국과 중국을 일컫는 G2나 G7, G20처럼 세계질서를 이끄는 주도세력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미국 리스크(위험)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이 2011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처음 쓴 용어다.

리처드 휴로위츠 옥타비안리포트 발행인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쓴 글에서 20세기의 절반에 이르는 시간 동안 세계 양차대전을 비롯한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얻은 브레튼우즈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브레튼우즈 회의 대표들은 번영으로 가는 길이 협력과 공정한 규칙, 유연하지만 건전한 자금으로 닦인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75년이 지나 세계가 급격히 변했고 1944년 체제로 복귀할 수도 없지만, 브레튼우즈의 정신은 여전히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FT는 지난 17일자 사설에서 "설립 75주년을 맞은 IMF와 세계은행이 적응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며 "'브레튼우즈 쌍둥이'의 소멸은 두 기관의 전문성과 신뢰성, 자금력의 부재로 이어져 분명히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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