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강원도 인제군 인제 한계산성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인제 한계산성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설악산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 내에 있는 유적으로, 한계산(해발고도 1430.4m)을 중심으로 동남쪽과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자연적인 암벽지대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성벽을 구축했다.
13세기경 축조된 한계산성은 입지와 양상을 볼 때 시대변화에 따른 성곽 확장과 성벽이 연장된 구조가 잘 나타난다. 성벽과 별도로 축조된 돈후(토축 또는 석축벽을 쌓아서 만든 파수보는 망대) 시설물을 갖추고 있어 몽골 침략에 맞서 사용한 입보산성(들어가서 지키는 산성)임을 알 수 있다. 한계산성은 평면구조와 축성방식, 부속시설물의 변화양상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중세시기 산성이다.
상성은 험준한 곳에 축조된 산성으로 13세기 험준한 곳에 주로 형성했던 산성들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한 상성과 하성 시굴조사 결과, 상성에서는 총 15개소의 구들 건물지, 부분적으로 남아 있던 성벽 기저부를 확인했고, 청자와 도기 조각 등이 나왔다. 하성에서는 총 18개소의 건물지와 ‘至正十八年(지정십팔년)’명(1358년, 공민왕 7년) 기와 조각, 백자조각 등이 나와 한계산성이 13세기 축조된 이래 고려 말에 다시 대대적으로 보수 또는 증축(혹은 개축)돼 조선 시대까지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상성과 하성에서 나온 건물지 유구와 유물들은 시대별 다른 양상으로 한계산성 활용시기 등에 대한 객관적인 고고학적 자료로 판단된다.
한계산성은 고려 시대 몽골과의 항전지이자 승전지로,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1259년(고려 고종 46년) 몽골에 투항한 조휘 일당이 몽골 군사를 끌고 와 산성을 공격했으나 점령하지 못했고, 오히려 산성을 지키고 있던 방호별감 안홍민이 야별초군을 거느리고 나아가 습격해 모두 섬멸했다고 기록돼 있다.
한계산성은 30년 여몽전쟁의 최후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몽골 영향 아래 있던 쌍성총관부의 세력 확장을 저지한 국난극복의 역사적인 현장이고 대몽항쟁기 5차와 6차 침입 당시 만든 입보산성으로 성곽 변화과정과 고려말 조선초 공민왕의 반원정책, 동해안 일대의 왜구 침략 대비 등을 목적으로 축조한 성곽 양식 등을 비교‧연구할 수 있는 점에서도 학술적·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사적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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