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0시부터 2년 임기를 시작하는 윤석열 검찰총장(59․사법연수원 23기)의 사법연수원 선배및 동기 30명(모두 검사장급 이상)중 11명이 사퇴하거나 사의를 표명했다(24일 낮 12시 현재). 절반 이상이 옷을 벗을 것이라는 예상을 깬 ‘중폭 사임’이다. 검찰 역사상 검찰총장의 동기가 고검장 등으로 잔류했던 적은 있으나 선배 검사가 지휘부에 남은 적은 없어 검찰의 기수 문화 파괴에 법조계는 큰 관심을 쏟고 있다.
그간 검찰엔 검찰총장 취임시 선배나 동기는 용퇴를 해 총장이 소신껏 인사를 하는 관행이 있어 왔으나 이젠 총장의 선배가 총장의 지휘를 받는 ‘약간은 어색하고 불편한’ 조직 문화가 탄생하게 됐다.
총장의 선배나 동기들이 대거 퇴진을 않는 이유는, 일시적으로 왕창 나가면 로펌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1~2년 후를 내다본다는 현실적인 계산이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 간부도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므로 후배의 지휘를 받을 망정 ‘끗발있는 현직’을 고수하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 않을까.
재계에서도 젊은 회장이 취임시 나이많은 계열 회사 사장들은 거의 모두 옷을 벗는다. 물론 이는 ‘기수 문화’가 아닌 근무 계약이 해지되는 ‘강제 퇴임’이다. 회장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장들을 부리기가 껄끄러운 탓이다. ‘회장급’인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SK 최태원회장이 40~50대에 취임했을때 만 60세 이상 부회장과 사장들은 자연스레 정리가 됐다.
지난해 LG 총수로 부임한 구광모 회장(당시 40세)은 워낙 젊은 탓에 나이든 임원들이 거의 유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LG 그룹의 사시(社是)가 ‘인화’인 탓도 있지만 젊은 회장을 잘 보좌하기 위해서는 노련한 경영자의 지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LG 그룹의 케이스와 정반대인 해태 그룹을 살펴보자. 박병규 창업주가 1977년 갑자기 52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아들 박건배가 28세에 회장직을 승계하게 된다. 박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선친보다 더 나이가 많은 60세 이상 임원들은 모두 정리했다. 그렇지만 패기와 추진력으로 젊은 박회장을 잘 보좌할줄 알았던 40,50대 임원들은 회장의 비위만 맞추며 숱한 비리를 저질러 그룹 전체의 재정이 크게 악화됐다. 박건배회장은 뒤늦게 60대 ‘창업 공신’들을 임원으로 재기용했으나 이미 타이밍을 놓쳐 결국 부도로 그룹이 해제되고 말았다.
스포츠계에서는 검찰만큼 ‘기수 문화’가 세다. 어느 종목이든 신임 감독은 자신의 후배들로 코치진을 구성해 일사분란한 팀웍을 중요시한다. 이른바 ‘000 사단’으로 감독이 옮길 때마다 코치들도 함께 이동한다. 하지만 40대 감독에게는 노련한 코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위기 관리때, 혹은 지혜로운 전략이 필요할 때는 젊음과 패기보다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프로야구 LG 트윈스 류중일감독(56)은 현명하다. 자신보다 2년 선배인 신경식, 최일언을 타격과 투수 코치로 기용, 팀 전력을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 LG는 빈약한 마운드와 타력을 두 코치의 열성어린 지도로 회복, 전반기를 예상보다 좋은 4위로 마치는 선전을 보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