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 호날두”를 연호하던 관중들이 “메시, 메시”를 외쳤다. 환호가 야유로 바뀐 순간이었다.
떠들썩했던 세계적인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는 벤치만 달구다 몸도 풀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12년 만에 내한한 호날두를 보기 위해 기대감에 부풀었던 한국 축구팬들은 철저히 기만당했다. 대국민 사기극에 가까운 촌극이었다.
호날두를 간판에 내걸었던 이번 유벤투스(이탈리아)와 팀 K리그의 친선경기 이벤트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이날 경기는 유벤투스의 지각으로 약 1시간 가까이 지연돼 킥오프했고, 앞서 호날두는 컨디션 관리를 위해 팬 사인회도 취소했다. 심지어 경기마저 단 1초도 뛰지 않고 결장했다.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유벤투스와 팀 K리그의 친선경기. 이날 이벤트를 앞두고 축구 팬들은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올해 34세 베테랑인 호날두가 뛰는 모습을 한국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최고 40만원 프리미엄 존을 포함한 입장권 6만5000장은 2시간 30분 만에 매진됐다. 입장 수익만 60억원에 달했다. 국내 스포츠 단일 경기 사상 역대 최대 규모였다. 한국 팬들의 지갑을 연 티켓 파워를 쥔 주인공은 호날두였다. 그러나 호날두는 그 어떤 팬 서비스도 보여주지 못했다.
호날두는 이날 선발명단에서 제외돼 벤치에서 출발했고, 후반전에도 벤치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날두가 벤치에서 일어난 건 단 두 차례뿐이었다. 전반전 종료와 후반전이 끝난 경기 종료 뒤였다. 주최사인 더페스타 측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호날두가 45분 출전하는 계약조항을 넣었다고 주장했으나 호날두는 뛰지 않았다.
이날 경기 도중 전광판에 호날두의 모습만 비춰도 환호성을 지르던 6만5000명의 관중은 어느새 야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호날두의 결장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메시”를 외쳤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는 호날두와 함께 세계 축구를 양분하는 라이벌이다.
이날 팬들의 불만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유벤투스는 경기 당일 입국하는 무리한 일정이었다. 중국 난징에서 전세기 편으로 인천공항에 입국한 유벤투스는 악천후로 2시간 늦게 도착했다. 일정은 꼬였다. 애초 오후 4시 서울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호날두의 팬 사인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취소됐다. 이유는 호날두의 컨디션 관리 차원이었다. 호날두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팬들은 허망하게 시간만 낭비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벤투스는 심지어 경기 시간도 맞추지 못하고 지각했다. 킥오프 예정이었던 오후 8시까지 경기장에 도착도 못한 유벤투스 탓에 오후 8시 58분에 경기가 시작됐다. 이벤트로 열린 친선경기였지만, 해외토픽에 오를만한 코미디 같은 사건이었다.
전반 종료 직전인 44분 팀 K리그 간판 공격수 세징야(대구)가 2-1로 앞서는 추가골을 터뜨린 뒤 호날두의 전매특허인 ‘호우 세리머니’를 펼쳤다. 호날두는 전반 종료 후 라커룸으로 들어가면서 세징야와 어깨동무를 한 뒤 포르투갈어로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이때만 해도 호날두가 후반전 교체 투입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호날두는 벤치를 지켰고,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자 그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 결국 이날 경기는 3-3 무승부로 끝났다. 호날두는 조용히 벤치에서 일어나 어두운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최근 호날두의 컨디션은 이상이 없었다. 호날두는 21일 싱가포르에서 토트넘(잉글랜드)과 인터네셔널 챔피언스컵 1차전에 선발 출전해 골 맛을 봤고, 24일 중국에서 인터밀란(이탈리아)와 2차전에서도 골을 터뜨렸다. 호날두는 이틀 뒤 한국에서는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사전 양해도 없었고, 호날두의 결장 이유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경기를 마친 뒤 마우리치오 사리 유벤투스 감독은 "호날두는 원래 뛸 예정이었으나 컨디션과 근육 상태가 좋지 않아 경기 전 상의해서 안 뛰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면서 "어젯밤(중국 난징)에 결정됐다. 싱가포르에서 중국까지 최근 일주일 스케줄이 정말 힘들었다. 이동시간도 상당히 길었다"고 밝혔다.
이미 이날 경기 이전 확정된 호날두의 불참 결정을 한국 팬들만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호날두로 티켓 홍보에 나선 주최사가 이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번 유벤투스 방한 경기는 한동안 논란이 예상된다. 한국 팬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우리 형’이라는 애칭을 얻은 호날두가 두 번째 한국 방문에서는 많은 것을 잃고 떠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팀 K리그는 최고의 경기력으로 최상의 팬 서비스를 선보였다. 팀 K리그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경기를 주도했고, 체면을 구길 뻔 했던 유벤투스는 경기 막판 2골을 몰아넣어 가까스로 망신을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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