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이끌려면 남들보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을 써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면장은 읍면동의 행정체계에서 면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쓰면서도, 의문을 가졌을지 모른다. 왜 하필 면장(面長)이람? 동장이나 통장은 몰라도 할 수 있나? 면장부터는 학력이 필요하다는 얘긴가?
'알아야 면장'이란 관용어는, 일반의 오해가 빚은 오용(誤用)인 경우가 많다. 면장(面牆)은 '담벼락을 마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흔히 면면장(免面牆)이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담벼락을 마주 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을 면하다'라는 의미다. 사람이 배움이 적고 소견이 좁아 대화가 안 되고 답답한 상황이 '면장'이란 의미이고, 그 답답함을 해결하는 것이 '면면장'이다. 면면장을 줄여서 면장(免牆)이라고도 한다. 마치 담벼락을 보고 얘기하는 것 같이 꽉 막힌 사람이 어느 시대엔들 왜 없었겠는가.
이 말은 논어 양화(陽貨)편에 나온다. 공자가 아들 리(鯉)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남과 소남의 시를 공부했느냐. 사람이 이것을 읽지 않으면 면장(面牆)을 한 것처럼 더 나아가지 못한다." 주남과 소남의 시는 시경의 글로 수신제가를 담고 있다. 서경(書經)에도 '배우지 않으면 면장을 한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전거(典據)로, '알아야 면장'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즉 공부를 해야 말귀가 트이고 생각이 밝아져서 담벼락처럼 답답한 구석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책깨나 읽지 않은 사람이면 의미를 알기 어려운, 현학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배움이 부족해서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는 저 담벼락 인간 외에도 소 같은 인간이 있다. 그걸 벽창우(碧昌牛)라 하는데 이것은 평안도의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를 말한다. 이 소는 아주 크고 억세기로 소문 났는데, 그래서 벽창우는 미련하고 고집이 세면서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답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 표현 또한 오해가 생기면서 '벽창호'로 바뀌어 쓰이기도 한다. 벽창호(壁窓戶)로 오분석을 한 것이다. 벽창호는, 아까 공자가 말한 담벼락과 거의 같은 뜻이 아닌가.
요즘 말이 안 통하는 사람, 고집불통의 사람, 소통불능의 사람, 확증편향으로 똘똘 뭉친 아집의 무리들이 도처에서 담벼락같이 버티고 서서 구석구석 답답증이 창궐하는 중이라, '면면장'이 여름날 찬물 한 그릇처럼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