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외교의 시간…韓日갈등 출구전략, 무엇을 더 얻어갈지 생각해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한지연 기자
입력 2019-07-31 18:3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日 화이트리스트 배제 초읽기 임박…한일갈등 해법 모색위한 전문가 인터뷰

  • 신각수 전 주일대사 "외교는 타협의 기술...국익 추구하되 전체적으로 살펴야"

  • "일본과 신사협정 통해 확전 막아야...강제징용, 외교로 촉발된 문제인 만큼 외교로 풀어야"


"국가 대 국가가 맺은 조약과 사법부의 판단이 다를 때 정부가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 타협점을 찾는 게 '외교적 노력'이다. 지나친 '피해자 중심주의'에 매몰돼 전체 국익을 헤아리지 못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최근 광화문 일대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세구 기자 k39@]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최근 아주경제 기자와 만나 "100%를 이기는 외교는 없다. 외교는 60~70%를 얻기 위한 타협의 기술"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강화되고 있는 사태와 관련해 "민주주의 국가로서 여론을 존중하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여론에만 매몰되면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서 "국가에는 피해자만 있는 게 아니고, 국익에는 피해자가 배상받을 권리 뿐 아니라 국가안보, 경제, 미래세대의 기대이익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됐기 때문에 정부가 큰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신 전 대사는 한·일 갈등을 풀기 위해선 철저하게 외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강제징용 판결 이면에는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느냐는 보다 근본적 물음이 깔려있다"면서 "오랜시간 동안 한·일이 타협을 못봐 외교적으로 봉합해놓은 사안을 이번에 한국(사법부)이 다시 뜯어내 갈등을 방조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방안을 한국이 먼저 제안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과거사 문제는 법적으로 딱 끊어지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융통성 있는 외교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징용 판결로 인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시간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불화수소, 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 등 한국 기업의 핵심소재 3개 품목을 수출규제한데 이어 최근에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 우방국에 대한 전략물자수출 우대)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 전 대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용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외에도 강제징용 해결 추이에 따라 일본은 관세인상, 송금정지, 비자발급 제한, 한국 농산물 수입 규제 등 추가보복조치를 계속 내놓을 것"이라면서 "트리거(방아쇠)는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이 현금화 단계에 접어드는 이달 말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갈등 장기화로 인한 부작용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3일 동해와 남해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들이 우리 영공과 방공식별구역(KADIZ)를 침범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례적인 중·러 도발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일 갈등으로 벌어진 한·미·일 공조 체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신 전 대사는 "무엇을 위해 한일이 '강대강'으로 충돌하려하는지,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한·일 갈등만으로 볼 게 아니라 전체 판에서 우리의 위치가 약화되면서 생겨나는 전략적 손실을 누가 책임질 건지 냉정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러가 대한민국 영공을 침해하고, 중국 국방백서에 사드가 등장하는 것도 한미일 결속이 흐트러지면서 생겨나는 문제"라면서 "강제징용에만 매몰돼 다른 커다란 전략적 이익을 잃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사진=김세구 기자 k39@]



신 전 대사는 최근 과거사에 대한 일본 여론이 극우로 치닫고 있는 경향을 우려했다. 최근 일본 언론이 실시한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여론조사 결과에서 찬성이 50~60%, 반대가 10~20% 로 2:1의 비율을 보였다. 일본 대부분의 국민들이 한국에 대한 추가 보복 조치를 환영한다는 의미다.

그는 "일본 국민들이 한국의 '과거사 컴플랙스'에 지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경제보복 조치 전까지 한국의 대일 호감도는 꾸준히 올라갔지만 일본의 대한 호감도는 꾸준히 하락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화해치유재단 해산, 한일청구권협정 부정 등으로 약속을 뒤엎는 한국에 대해 일본 국민들이 피로감을 호소하니까 일본 정치인 역시 여론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과거 독재정권, 권위주의적 정부, 촛불시위 등을 거치면서 '정의가 아닌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즉 법보다 정의가 우선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일본은 법과 약속을 지키는게 매우 중요한 사회"라면서 "(과거사는)일본이 물론 잘못했지만 우리(피해자)도 이제 가해자가 미안한 마음을 갖도록 차분하고 대범하게 대응하는 공동체 의식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베 정권은 영원하지 않지만 일본 주민은 영원한 우리의 이웃"이라고 덧붙였다.

신 전 대사는 한·일갈등의 확전을 막기 위해 '외교적 해결'에 대한 시그널이 강화되는 현상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일 갈등이 강대강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대일특사를 파견해 신사협정을 맺는 일종의 외교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일본은 추가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국은 강제징용 해결에 대한 진전된 방안을 마련한다는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요한 건 일본 정부가 협의할 수 있는 강제징용 문제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결국 정부가 참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최근 총리실에서 정부 참여방안을 검토한 다양한 흔적이 나왔다"고 했다.

또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것은 명분이고, 지금은 명분에 구속돼 현실적 타협안을 절충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옵션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존중한다는 점을 명시해주면 된다"고 했다.

한·일 관계는 전환기 국제관계 속에서도 동아시아의 전략적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한·일 양국은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을 존중하는 유일한 2개의 국가"라면서 "한·일 관계에 과거사 문제가 꼬이면 전환기 시대를 넘기기 위한 한일의 윈윈전략이 전부 차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제 3국이 한국과 일본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지켜보고 있다"면서 "과거사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없겠지만 양국이 기회비용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해 현안을 극복하면서 한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