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기자연합회가 연 ‘딥페이크 시대, 팩트체킹 붐업 토크’ 이벤트에서 3년 전 핀란드 라플란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최원석씨를 만났다. 그는 YTN에서 5년가량 기자로 일하다가 한국 언론 현실이 갑갑해 유학을 결심했다고 했다. 미국·영국 놔두고 왜 핀란드냐고 묻자, 뉴스 신뢰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미디어교육이 발달한 나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잠시 귀국한 그와 미디어교육과 저널리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흥미로운 사례를 접했다. 그가 심층 조사했다는 ‘아아무레흐티(Aamulehti)’라는 한 일간신문 사례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공동 연구해 발간한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8'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조사 대상 37개국 가운데 최하위다. 2017년에 이어 여전히 꼴찌다. 이 조사에서 아아무레흐티가 속한 핀란드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전혀 의외가 아니다. 저널리즘이란 말을 뒤에 붙이기도 민망한 받아쓰기 기사와 얄팍한 수익을 노리는 어뷰징 기사들이 넘쳐나고, 허위정보를 팩트체크하기는커녕 오보를 적잖이 만들어내면서 신뢰 하락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에 한국 언론은 직면해 있다.
한국 언론에 대한 낮은 신뢰가 경영 위기를 불러오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자 귀결로 보인다. 종이신문과 지상파 방송사의 경영난은 기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해 특히 지상파 방송은 심상치 않다. 최근 터져나온 ‘KBS 비상경영계획 2019’에 따르면 올해 KBS의 사업손실은 1000억원이 넘을 듯하고 내년 후반부터는 은행 차입금에 의존해야 하며, 앞으로 5년간 누적손실이 650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MBC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반기 적자만 400억원대로 올 1월 예상한 올해 적자 규모를 훌쩍 넘어섰다. 적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비상경영 계획을 내놓은 상태다.
수년 동안 지상파 방송사 경영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주수입원인 광고매출이 줄어드는데, 제작비를 포함한 매출원가는 늘어난 탓이다. 전체 방송광고 시장에서 지상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68.2%에서 2018년 40.3%로 꾸준히 줄고 있다. 줄어든 자리를 CJ ENM과 종합편성채널, 급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광고시장이 차지했다. 지상파 중심 방송시대의 종언은 시청점유율에서도 뚜렷하다. 지상파 3사는 시청점유율 조사가 시작된 2010년 이래 줄곧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해 KBS는 시청점유율이 25%로 1위 자리를 수성했지만 2010년에 비해서는 11.2% 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2010년에 9.8%로 MBC의 절반 수준에 그쳤던 CJ ENM이 2015년 SBS를 넘어서더니 지난해에는 MBC마저 제쳤다. CJ가 2위에 오른 것은 2010년 종편이 출범한 이후 지상파 3사의 점유율이 줄곧 떨어진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인 콘텐츠 경쟁력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경영위기는 미디어환경의 급변이 몰고 온 것이지 언론의 신뢰 하락과는 상관없다고? 설령 관련성이 있다 하더라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같은 신문은 독자 중시 전략으로 타개책을 찾을 수 있지만 방송은 사뭇 다르다고 말이다. 지상파방송이든, 종이신문이든, 인터넷 언론이든, 유튜브 같은 디지털플랫폼에서 활동하는 1인 크리에이터이든 그 업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독자 혹은 시청자, 즉 이용자에게 사랑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 이용자에 선택 받지 못한 언론을 선택하는 광고주가 있다면 그건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저널리즘은 18세기 구독의 시대를 지나 광고의 시대로, 포털·소셜미디어 시대를 거쳐 이제 SAAS(story as a service), 다시 구독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 6월 초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2019)에서처럼 ‘2019 세계신문협회 연차총회’에서도 화두는 언론의 지속가능성과 수익창출 모델이었다고 한다. 저널리즘에 가치를 둔 고품질 콘텐츠로 이용자 맞춤형 지불모델을 실천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언론의 신뢰위기와 경영위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답은 결국 ‘이용자지상주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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