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협의회 출범식에서 정진석 자유한국당 일본수출규제대책특위위원장이 모두 발언을 통해 촉구한 내용이다. '전경련 패싱'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이날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한 '일본통' 전경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양국 간 경제적 완충지대 조성 역할 기대
재계 관계자들은 1일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한·일 간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전경련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경련은 한·일 간 불화가 있을 때마다 전면에 나서 '중재자' 역할을 충실히 했다. 1973년 8월 한국 국가기관이 일본 도쿄에서 불법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한 '김대중 납치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크게 분노했고, 사태는 악화돼 국교 중단 위기까지 맞았다. 이후 전경련은 악화된 양국 관계를 풀기 위해 게이단렌과 함께 1983년 '한·일 재계회의'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양국 경제계의 물꼬를 텄던 한·일 재계회의는 2007년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서 잠정 중단됐다. 특히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이에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2014년 5월 일본을 전격 방문해 게이단렌 회장, 자민당 관계자 등과의 회동을 통해 7년간 닫혀 있던 '소통의 문'인 한·일 재계회의 재개 합의를 이끌어냈다.
사실 전경련은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도 미리 예견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해왔다. △ 한·일관계 진단 전문가 긴급 좌담회(2019년 4월 15일)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주일 한국기업 영향 설문조사(5월 27일) △악화된 한·일관계에 따른 교류 위축 가능성 분석(6월 14일) △일본의 관세부과 시나리오에 따른 한국의 대일 수출 영향 분석(6월 21일) 등을 통해서 정치권과 경제계에 경종을 울려왔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후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렸던 '한·일관계를 통해 본 우리 경제 현황과 해법 특별대담'에서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안타까움을 호소한 배경이기도 하다.
당시 권 부회장은 "일본의 조치가 갑작스럽다는 여론이 있지만, 이미 지난 4월 전경련에서 개최한 한·일관계 진단 세미나에서도 자민당이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검토한다는 지적을 했다"며 "오래전부터 심각한 상황을 알리는 신호를 여러 번 보냈지만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전경련 패싱'이라는 조어가 그의 주장을 대변한다. 이번 정부에서는 전경련이 자의든 타의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주요 자리에 전경련을 부르지 않고 있다. 이번 협의회 출범식뿐만이 아니다.
청와대는 지난달 10일 30대 대기업 총수 또는 최고경영자(CEO)와 경제단체 4곳을 불러 일본의 조치에 대응하는 논의를 벌였지만, 전경련은 초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로 인해 일본에 가장 많은 네트워크를 가진 경제단체인 전경련을 이 자리에도 부르지 않은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전경련의 일본 주요 파트너인 게이단렌도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국내 재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게이단렌 회장은 최근 "(양국 간) 문화나 이해에 대한 차이가 선명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민간 차원의 교류에서 도망쳐서는 안 된다"며 "양국 경제계는 같은 생각(한·일 우호)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허 회장을 비롯해 전경련의 주요 임원들은 오랫동안 게이단렌, 자민당 등 현지 경제계, 정치권 등과 교류해 오며 두터운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이 같은 자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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