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은 일본의 추가제재에 대응해 이미 지난달부터 대책 마련에 돌입해 수출 규제 가능성이 있는 품목들을 점검하고 재고 확보에 나섰지만, 당장 일본산을 대체하는 것이 쉽지 않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2일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내주 중 공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시행 시점은 이달 하순이 유력하다.
백색국가는 군사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물품이나 기술을 일본 기업이 수출할 때 일본 정부가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나라다. 지금까지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 외에 한국,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 총 27개국이 지정돼 있었다. 2004년 지정된 한국은 이 리스트에서 빠지는 첫 국가로 기록됐다.
이번 화이트국 제외로 수출규제 품목은 3개에서 1100여개로 늘어난다. 만에 하나 반도체 제조공정의 핵심 원자재인 실리콘웨이퍼(반도체 기판)와 회로패턴 전사(轉寫)용 원판인 포토마스크, 그 포토마스크의 원자재인 블랭크 마스크 등 핵심 소재와 제조 장비가 포함될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디스플레이 업계 역시 일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가 전체의 30%를 차지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글로벌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한국 반도체 기업에 미칠 파급력은 올 3분기에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보고서는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꼽은 3종 중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에 필요한 '고순도 불화수소'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략 2.5개월가량의 재고를 확보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앞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총력 대응'을 선언한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출규제와 관련해서는 전사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수립하는 등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수출 규제 품목에 대해 재고를 적극 확보하고 있다"면서 "거래업체 다변화, 공정투입 최소화 등으로 생산 차질이 없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 생산 제품을 포함한 여러 개 업체의 소재들을 테스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상근 전경련 전무는 "양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뿐 아니라 한미일 안보 공동체의 주축이며, 한해 천만 명 이상이 상호 방문하는 핵심 우방국"이라며 "일본 정부가 추가 수출규제를 결정한 것에 대해 한국 경제계는 양국 간의 협력적 경제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도 전날 공식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는 양국과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향후 무역분쟁이 확대될 경우 국제무역원칙에 따라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SEMI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기업뿐 아니라 JSR, 스미토모 등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도 가입돼 있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 협력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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