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서 찍은 가족사진 하나 없는 게 제일 속상하죠"
#장희철(47‧남‧가명)씨는 11년 차 택배 노동자다. 그에게는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이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아버지와 대화하는 일이 거의 없다. 대화거리가 없다는 게 이유다. 장씨 가족이 함께 여행간 일도 손에 꼽는다. 여행은커녕 일하면서 비행기 한 번 타본 적 없다는 장씨. 올해는 가족과 여름휴가를 꼭 가고 싶다는 장씨. 그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16~17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하자'는 게시글에 동의한다는 댓글을 남겼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들이 오는 16일과 17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해달라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해 8월 15일 광복절은 목요일이다. 주5일 근무를 하는 노동자가 16일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4일간의 휴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징검다리 연휴다. 하지만 연휴기간에도 배송해야 하는 주6일 근로자 택배 노동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지난달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이 올라왔다. 8월 16~17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해 택배 노동자에게 휴식을 보장해주자는 내용이다.
택배 노동자는 개인사업자, 자영업자 형태로 분류된다.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서 받을 수 있는 법적 울타리 안에 있지 않다. 최근 주52시간제 등이 추가되면서 근로기준법이 개선됐다. 하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택배 노동자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물론 택배 노동자도 휴가갈 수 있다. 하지만 택배 노동자에게 휴가는 곧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택배 배달을 할 수 없을 때는 대신 배달해 줄 수 있는 용차를 써야 한다. 본인에게 할당된 택배 수량을 모두 배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차를 사용할 경우 기존 수수료보다 높은 배달료를 택배 노동자가 용차 택배기사에게 지불해야 한다. 평균 택배 1건당 용차 수수료는 1200원 내외다. 반면 택배 노동자가 택배 한 개를 배달하고 받는 수수료는 700원 내외다.
하루 평균 300개의 택배를 배달하는 택배 노동자 기준으로 보면, 하루 9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장 씨는 "휴가 내고 여행 갈 수 있지만 대신 배달해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며 "한 건당 받는 수수료보다 더 많은 돈을 줘야 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추가 수수료에 대한 부담을 택배 노동자가 떠맡는다고 해도 인사고과에 대한 불안감은 피하기 힘들다.
택배 노동자는 보통 택배회사와 1년 단위로 계약을 다시 한다. 때문에 휴가를 사용하면 혹시라도 재계약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휴가를 쉽게 쓸 수도 없는 실정이다.
최태우씨(51‧남‧가명)는 "동료 중에 여름휴가 가봤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점심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정도로 바쁜데 어떻게 여름휴가를 생각할 수 있겠냐"며 씁쓸해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택배 없는 날' 지정을 지지한다며, 택배 노동자들의 주 5일 근무도 허용하자는 의견이 있다. 또한 2일 기준 '택배 없는 날' 관련 국민청원에 7000명 넘는 국민이 참여했다.
주부 이혜진씨(30‧여)는 "대형마트 휴무일 도입 초기에도 시끄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지지 않았냐"며 "우리 모두 소비자이자 노동자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주로 택배를 이용해 거래하는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들은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 중인 최우리씨(36‧여)는 "토요일에 배송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고객들만 이해해준다면 택배 노동자들의 주5일 근무도 찬성"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온라인에서 여성 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권민지씨(27‧여)는 "8월 두 번째 주에 동대문 의류 시장이 휴가인데, 세 번째 주에 또 택배 업무가 중단되면 소비자 불만이 폭주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편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전국택배노동조합으로 이뤄진 택배노동자기본권쟁취투쟁본부는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8월 16, 17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해 택배 노동자들이 휴식을 보장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며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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