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대상국)에서 끝내 배제한 가운데 한일 외교장관이 다자 외교 무대에서 재차 맞붙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이날 오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외교장관회의에 함께 참석했다.
이날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은 모두발언과 비공개회의에서 각각 세 차례, 네 차례씩 발언했는데 이는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보기 힘든 광경으로 전해졌다.
한일 외교장관은 이날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지만, 착석하기 전이나 기념촬영 시 악수를 하지 않는 등 냉랭한 기류를 보였다.
강 장관은 먼저 모두발언을 통해 "오늘 아침 수출 우대조치를 받는 무역상대국 목록에서 일방적이고 임의로 한국을 제외한 일본의 결정에 대해 관심을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러한 결정을 엄중히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강 장관은 "무역과 통상의 자유로운 흐름을 확대시켜 우리가 공유하는 파이의 조각을 키워나가야 하는데 불행히도 우리의 지역에서 이러한 근본 원칙이 도전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장관은 또 "한국은 보다 자유롭고 공정한 거래 시스템 기반을 강화해 나가고자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주요 무역 파트너들 간의 긴장 고조에 대해 아세안 외교장관들이 지난달 31일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표현한 우려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앞서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지난달 31일 이 공동성명을 채택하며, "주요 교역국 사이에서 발생한 무역갈등을 우려하며, WTO(세계무역기구)에 구체화된 투명하고 개방적이며 규칙을 따르는 다자 무역체제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 28항에 동의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고노 외무상은 "나는 아세안 친구들로부터 우리의 수출 관리 조치에 대한 불만을 듣지 못했다"면서 "한국은 우리의 아세안 친구들보다 더 우호적이거나 동등한 지위를 누려왔고, 누릴 것인데 강경화 장관이 언급한 불만이 무슨 근거인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고노 외무상은 "민감한 재화와 기술의 수출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일본의 책임"이라며 "일본의 수출 통제 관련 필수적이고 합법적인 점검은 WTO 합의와 관련 규정을 포함한 자유무역 체제와 전적으로 양립가능하다"고 피력했다.
또 "앞으로 이와 관련한 다른 이슈(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고노 외무상은 한국에 대해서만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감행한 것과 관련해 합리적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다.
아세안 장관들은 모두발언 이후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지역 및 국제정세 등을 의제로 한 실질문제 토의를 진행했다. 이날 토의에서는 각 국가가 한 차례씩 발언하고 끝나는데 한일 외교장관이 발언을 주고받으며 설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교부 장관이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발화점이 됐다.
발라크리쉬난 장관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아세안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면서 "신뢰 관계 증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서는 상호의존을 높여가야 하는 만큼 화이트리스트 대상국을 축소할 게 아니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을 제외할 것이 아니라 아세안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후 발언권을 얻은 왕이 중국 부장도 싱가포르 외교장관의 발언에 동감하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나가며 "아세안+3에 참여하는 나라들은 '하나의 가족'과 같다. 선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이 지역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이에 고노 장관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수산물 수입규제·한일 기본조약·수출통제 등 3가지 문제를 겪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연계돼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여기서 언급된 한일기본조약은 청구권협정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강 장관은 재차 발언을 요청하고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내려졌고 이후 일본이 대한(對韓) 경제보복 등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고 섧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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