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덕에 우도환을 사랑하는 많은 팬이 생겨났지만 정작 배우 스스로는 한정적 이미지에 숱한 고민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었다. 인터뷰마다 "더 이상 악역은 피하고 싶다"는 바람은 내비쳤던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하도록 우도환은 영화 '사자'(감독 김주환)에서 또 한 번 악역을 맡았다. 악역 중의 악역 '지신' 역이다.
지신은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 분)가 구마 사제 '안신부'(안성기 분)를 만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강력한 악(惡)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사자'에서 악을 퍼뜨리는 검은 주교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악역'인 셈. 그는 왜, '사자' 그리고 '지신'을 선택하게 된 걸까.
"단순히 악역이라서가 아니라 시나리오를 읽고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작품을 그리고 이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못하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감독님께 직접 말씀드리려고 찾아갔어요. 그런데 한 시간도 안 돼 '하겠다'고 해버렸죠. 하하하."
김주환 감독은 우도환에게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비주얼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섹시한 악역을 만들자며 함께 도전해봊고 제안한 것도 우도환의 마음을 흔들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내가 동기만 낸다면 재밌는 작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감독님과)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출연을 결정하게 됐어요."
우도환의 말대로 '지신'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악역이었다. 베일에 둘러싸인 미스터리한 인물로 상대방의 약점을 꿰뚫고 이용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유연하게 상대방에게 파고들어 '악'을 끌어내는 그야말로 '악마' 같은 캐릭터다.
"레퍼런스가 없었어요. 참고자료도 떠오르지 않았죠. 지신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컸어요. 또 지신이 악을 숭배하는 말이나 동작 같은 게 대본에 표현되지 않아 제가 만들어가는 작업도 필요했어요."
캐릭터의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전사 과정'도 필요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지신의 전사가 보이지 않아 좋다"고 말했지만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며 전사 작업은 필요한 일 중 하나였다.
"지신은 가장 힘든 시기에 검은 주교를 만나게 됐을 거로 생각해요. 고아로 예수님을 믿고 의지했던 아이지만 가장 힘든 시기 검은 주교의 속삭임에 넘어가게 된 거죠. 그런 맥락에서 영화 속 검은 주교를 믿게 된 부마자들도 이해가 갔어요.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이해하고 접근하고자 했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지신은 배우라면 한 번쯤 탐낼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기도 하다. 뱀 같은 인상의 지신은 상대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고 그를 옭아매기 때문이다. 우도환 역시 "마냥 강하고 세기만 한 악역이 아닌 게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지신은 만나는 인물마다 말투나 행동이 달라져요. 조폭, 호석, 안 신부, 용후 등 상황과 사람에 따라 (지신의 행동도) 달라지죠. 그런 점도 연기할 때 흥미롭고 즐거운 부분이었어요."
'마스터'부터 '구해줘' '매드독'에 이르기까지 우도환은 쉴 새 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왔다. 숨 가쁜 일정과 압박감에 무기력증에 빠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마스터'를 찍고 그렇게 큰 관심을 받을 줄 몰랐어요. 이후 줄줄이 드라마를 찍게 됐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제게 '잘해야 돼' '지금이 중요한 시기야'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다음 작품도 그다음 작품에도 이어지니까 압박감으로 이어졌어요. 그 누구도 '편하게 해도 돼' '재밌게 하면 돼'라는 말을 해주지 않더라고요.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정작 그런 말은 아무도 해주지 않았어요."
앞만 보고 달렸다고 했다. 쉬지도 않고 달리기만 하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압박감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모두 '적'으로 느껴진 것도 이쯤이었다.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당시 저는 그게 힘든 거로 생각지 못했어요. 그냥 계속 달리기만 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한 번 넘어졌는데 '아, 내가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을 정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자'를 만났고 다시 힘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우도환은 스스로 '안정'을 찾는 법을 깨달은 듯했다. 자신을 몰아붙일 때, 스스로 '멈추는 법'을 알게 된 그는 때마다 "세상은 다 같이 사는 것"이라고 마인드컨트롤을 한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다 같이 사는 세상' 그 말을 계속 되뇌어요."
시련을 겪고 다시 일어선 우도환은 다시금 작품과 연기에 대한 애정이 불타오르는 듯했다. 그는 차기작으로 JTBC 드라마 '나의 나라'를 찍고 있고, 영화 '신의 한수' 스핀오프작인 '귀수'로 또 한 번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사자' 홍보 일정을 전부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워요. 관객들의 반응을 조금 더 가깝게 느껴볼 수 없잖아요. 지금 '나의 나라' 촬영 중이고 올해 안에 '귀수'로 또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라 바쁘게 촬영 중입니다. 왜 쉬지 않느냐고요? 아직 안 해본 게 너무 많아서요. 그래서 아직 못 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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