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감독 이상근)은 그런 의미에서 조정석의 매력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 분)과 대학동아리 후배 의주(임윤아 분)가 원인 모를 유독가스를 피해 도심을 탈출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조정석의 매력으로 점철, 마치 판을 깔아준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 덕에 영화 '엑시트'는 지난달 31일 개봉,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에 이어 개봉 3일째 100만, 4일째 200만, 6일째 300만, 8일째 400만, 11일째 500만 관객 돌파에 순식간에 600만 관객까지 돌파한 것이다.
"반응이 좋으니 저도 기분 좋죠. 시사회 때도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확신이 들었어요. '아! 재밌구나!' 하하하. 조금씩 마음이 놓였죠."
조정석이 연기한 용남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 대학 시절 동아리 에이스로 불리던 남자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며 가족들에게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언제 어디서든 마주했을 법한 그 평범함은 대학 선배 혹은 사촌오빠 그것도 아니라면 나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용남을 연기할 때, 재수학원에 다니던 시절을 많이 생각했어요. 위축되고 힘들었던 시절이었죠. 칠순 잔치 신 할 때는 엄마 생각도 많이 났고요. 실제로 엄마 칠순 잔치 때는 제가 뮤지컬을 할 때라서 용남처럼 위축되어 있지는 않았는데, 대신 다들 'TV는 언제 나오냐'는 말을 습관처럼 했어요. 나는 무대에 서는 사람인데 TV 나오냐고 왜 물어보지? 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을 거예요. 용남의 상황이 이해가 간 것도 저와 비슷해서였고요."
당시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했지만, 용남을 연기하며 돌이켜 보니 그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조정석은 용남이라는 '짠내' 나고 '웃픈' 인물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용남이를 보면 뭐랄까. 저의 진짜 속내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힘들다고 혹은 잘 돼서 우쭐댈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있을 때는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잖아요. 그런 모습을 발견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조정석이 본 '청년 백수' 용남은 지질할수록 멋진 남자였다. 남들이 볼 때는 쓸모없는 재능을 가진 산악부 동아리 에이스가 결국 온 몸을 던져 가족을 구한다는 게 깊은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연기할 때도 그 부분에 주안점을 뒀어요. 용남이가 더 지질하고 짠 내 날수록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너무 가버리면 캐릭터가 달라져 버리니까 완급조절이 필요했죠. 너무 지질하다가 창문을 깨고 달려 나가는 모습은 너무 멋지게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그사이에 호흡을 조절하고 완급을 조절하는 게 중요했어요."
지질하고 웃픈 연기는 따라올 자가 없어 보인다. "이 분야 갑"이라는 칭찬에 "코미디가 좋다"며 호탕하게 웃는 얼굴은 그야말로 '즐기는 자' 다운 모습이었다.
"코미디를 너무 좋아하니까 어떻게 하면 재밌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계속 하는 거 같아요. 현장에서도, 현장 밖에서도요. 그런 생각이 힘들지 않고 즐거워요. 관객분들이 디테일에 관해서도 칭찬 많이 해주시는데 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런 게 연기로도 잘 묻어나는 거 같아요."
차지고 자연스러운 연기는 애드리브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조정석의 연기는 대본을 기반으로 철저한 계산 끝에 나온 것이라고.
"감독님 시나리오가 탄탄해서 애드리브를 넣을 데가 없었어요. 그걸 믿고 현실적으로 다가가는 데 초점을 맞췄죠. 저는 최대한 현실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 노력했어요.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넘나드는 등 비현실적인 부분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받아들여지게끔요."
조정석은 이상근 감독이 내민 시나리오를 보고 '신박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첫인상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영화의 스토리나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조정석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코미디를 사랑하는 그를 통해 차진 호흡으로 발휘됐다.
"이 영화의 색깔을 규정할 수는 없었지만, 머릿속에서 어떤 색깔이 마구 떠올랐어요. 그걸 잘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코미디 연기의 '갑'인 조정석이 본 윤아는 어땠을까. 그는 윤아에 관해 "소녀시대 팬으로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며 아낌없이 칭찬을 쏟아냈다.
"사실 망가지기 어려웠을 텐데, 이 역할에 완벽하게 녹아들어서 연기한다는 게 정말 멋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더 멋지게 보인다는 걸 안다는 게 정말 영민한 배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덕에 신도 살고 캐릭터도 풍성해지잖아요."
어느새 600만 관객을 동원한 '엑시트', 조정석을 비롯한 배우들, 스태프들은 이 기세를 몰아가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홍보에 매진하고 있다. 이토록 열정을 쏟아내는 것은 주연배우로서의 책임감 때문일까? 조정석에게 묻자 그는 "책임감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책임감 하나는 투철했었거든요. 생활통지표에도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은 꼭 있었을 정도니까. '모태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데도 '엑시트'에 대한 건, 더 어마어마한 거 같아요. 여름 시장에 나온 것도, 이런 큰 영화의 주연을 맡은 것도 처음이니까. 책임감이 들 수밖에 없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때도 책임감 하나로 해냈어요. 많은 분이 고생한 만큼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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