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책으로 12. 루슈디, 『조지프 앤턴』>
‘모욕일보(侮辱日報)’. 1989년 2월 ‘신정(神政)국가’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1902~1992)가 내린 사형선고로 인해 꼬박 10년간 숨어 살아야 했던 인도 태생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1947~ )는 자신을 추적하고, 모욕적으로 비난했던 영국 매체들을 자서전 <조지프 앤턴>에서 ‘모욕일보’라고 불렀다. 호메이니는 루슈디가 사형선고 5개월 전에 낸 <악마의 시>에서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전 세계 무슬림에게 그를 죽여도 좋다는 ‘파트와(Fatwa-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렸다. 조지프 앤턴은 루슈디가 길고 긴 도피와 잠적 기간 동안 사용한 가명이다. 그는 존경했던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조합해 이 가명을 만들었다.
1998년 서방과 아랍의 관계 개선으로 호메이니의 파트와가 철회되기까지 은신처를 숱하게 바꿔가며 도피생활을 계속해야 했던 루슈디는 호메이니의 과격한 추종자들과, 거액의 상금에 입맛을 다신 전문 킬러들의 무기인 총·칼·폭탄과 함께 녹음기·카메라·볼펜도 조심해야 했다. 녹음기·카메라·볼펜은 루슈디의 행방을 추적하던 기자들의 무기였다.
영국 언론은 그가 <악마의 시>를 씀으로써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아랍권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호메이니는 루슈디의 작품을 번역·출판·유통하는 사람들에게도 파트와가 적용된다고 쉰 목소리로 저주를 내렸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암살자의 총구와 칼·폭탄의 위험에 놓였으며, 실제로 몇 명은 소포 폭탄이 터져 즉사하기도 했다. 영국 언론은 이처럼 괜한 일을 저지른 루슈디를 왜 영국 정부가 특수경찰대를 투입해 24시간 경호해 주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10년 동안 너무나 실재적인 암살 위협과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 때문에 삶을 포기할 마음도 먹었던 루슈디는 가명의 절반을 빌려준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나르시스호의 검둥이>의 주인공의 대사,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하지 않겠소”를 “조지프 앤턴,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로 바꿔 죽음의 유혹을 이겨냈다.
루슈디는 암살자들의 추적은 영국 경찰의 보호 아래 숨어서 피했지만 언론의 공격에는 맞섰다. “나는 이슬람이라는 특정 종교를 모독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 의심할 자유 등등 모든 자유를 억압하고 여성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괴이한 신념체계를 비난했을 뿐”이라며 언론의 비난에 정면 대응했다. “파트와는 정권 안정을 위한 호메이니의 술책이며, 이 술책에 밀리면 이란 등 아랍에서는 물론 아랍 바깥의 세계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의 자유가 더 오래 억압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을 모욕하는 일이라면 이보다 훨씬 빨리,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말로, 탈고하기까지 4년이나 걸린 <악마의 시>가 이슬람을 모욕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비판을 일축했다.
<조지프 앤턴>에는 언론 및 기자들과의 갈등과 대결, 그리고 조롱과 혐오에 대해 따로 책을 내도 될 만큼 많은 실례가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다. “때때로 언론인들은 사태가 나빠지길 바라는 것 같았다. 모든 일이 순조롭다는 헤드라인은 눈길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시끄러운 일을 만들어내는 그녀(BBC기자)의 태도는 놀라웠다. 그녀는 뉴스에 인용할 적대적인 말을 얻기 위해 작정을 하고 스리랑카 무슬림 국회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고, 결국 하나를 건졌다.”
자신과 관련된 영상물을 불교국가인 스리랑카 대통령의 승인 하에 만들기로 했는데, 이 기자가 한 무슬림 의원에게서 스리랑카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적대적 코멘트를 유도해 보도하는 바람에 루슈디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다시 시작되고 종국에는 프로젝트가 무산된 사실을 이렇게 기록한 것이다. 스리랑카 대통령은 나중에 루슈디에게 “가치 있는 대의(大義)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더 중요한 순간이 간혹 있습니다”라는 말로 사과했다.
기자가 조롱 받는 이야기는 이렇다. "경찰의 안내로 도피를 시작한 첫날 겪은 일이다. 아내와 아담한 호텔방에 숨어서 식사를 했다. 호텔 측에서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투숙객 한 명이 ‘데일리 미러’ 기자인데, 부인도 아닌 여자를 데려와서 옆방에 며칠째 묵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기자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여자가 굉장한 매력 덩어리였는지 ‘미러’ 기자는 며칠 동안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러’가 '악마의 시' 작가의 은신처를 알아내려고 탐정들까지 동원하던 바로 그 순간, 이 기자는 작가의 바로 옆방에 있으면서도 특종을 놓치고 말았다.”
한·일 관계 악화로 언론의 좌우 양분화 현상이 극심하다. 문제의 본질과 해결 방안 모색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모욕과 경멸을 우선하는 글과 말이 신문과 방송에 넘쳐난다. 정해 놓은 보도방향에 질문과 답변을 짜맞춘 듯한 보도가 눈에 띈다. ‘기-승-전-반일’ 아니면 ‘기-승-전-친일’이라는 주장만 보인다. 기자는 누구에게 무엇이든 물을 수 있고, 기자의 질문에 무례한 질문은 없다고 하지만 무례한 기자, 무례한 태도, 무례한 말투가 자주 들린다. 모욕을 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이는 기사도 많다. 대한민국 언론이 ‘모욕일보’ ‘모욕방송’으로 통·폐합된 느낌이다.
1981년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을 받은 루슈디는 도피 중이던 1993년에도 부커상 25주년 기념상인 ‘부커 오브 부커상’을 받았다. 부커상 40주년인 2008년에는 ‘베스트 오브 부커상’을 받았다. 영국 외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노벨상은 주면 좋고,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태도다. <조지프 앤턴>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초대로 한림원 회원들과 점심을 한 후 스웨덴 한림원의 좌우명인 ‘smile och smak’이 적혀 있는 은화 한 닢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일반인으로 이 은화를 받은 사람은 없다. ‘smile och smak’은 ‘재능과 안목’이라는 뜻이다.
<분노>, <수치> 등 다른 작품에서도 재능과 안목을 발휘한 루슈디는 언론과 기자들을 살짝살짝 비하하고 있다. 기자들에게 경의를 표한 적은 없지만 짧은 마감 시간 안에 정해진 길이에 맞춰 글을 써내는 솜씨에는 놀라워했다. 파트와가 풀린 후, 그가 뉴욕타임스에서 객원 칼럼니스트로 일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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