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라인 정리] 멈추지 않는 홍콩 시위, 홍콩 시민 100만명을 모이게 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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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근 수습기자
입력 2019-08-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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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접한 중국 선전의 선전만(灣) 스타디움에 16일 무장경찰 소속의 장갑차와 병력 수송 트럭 등 차량이 배치돼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제공)


홍콩 시위가 날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서 촉발된 시위는 사그라들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인원이 참가하고 있다. 지난 3월 100만명이 모였던 시위부터 최근까지 시간 순서별로 사건을 정리했다.

◆홍콩시위의 발단, 범죄인 인도법안

홍콩의 시위가 촉발된 것은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이 원인이다. 홍콩 정부가 지난 3월 말부터 추진한 범죄인 인도 법안은 지난해 2월 대만에서 일어난 한 살인사건에서 시작됐다.

당시 홍콩인 찬퉁카이(20)가 대만에서 임신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쳐왔다. 홍콩은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영외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고 있다.

홍콩 정부는 찬퉁카이를 대만으로 인도하려 했지만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이를 실행할 수 없었다.

이에 홍콩 정부는 중국을 포함해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홍콩인들은 이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며 범죄인 인도 법안이 홍콩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결정적으로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3월, 첫 시위

홍콩 도심 가득 메운 '송환법 반대' 검은 시위대 지난 6월16일(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 공원 인근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홍콩시민들은 지난 3월31일 주최 측 추산 1만2000여 명, 경찰 추산 5200여 명이 참석한 시위를 시작으로 꾸준한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6월, 100만명이 모여서 외치다

6월 9일에는 홍콩 빅토리아 공원 등에 약 100만명(주최측 추산) 운집해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발생했다.

이어 6월 15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을 보류해 무기한 연기했다. 그날 저녁에는 홍콩 도심의 쇼핑몰 외벽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시민이 바닥으로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6월 16일에는 홍콩인이 송환법의 보류가 아닌 완전 철폐를 요구하며 다시 대규모 집회에 나섰다. 집회 주최 측은 시위에 참여한 인원이 거의 20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6월 18일에는 람 장관이 “시위대를 폭도라 부른 적 없다”는 공식 사과를 했으며 사회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송환법의 입법 절차를 재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7월

7월 1일에는 홍콩 반환 22주년 기념일 맞아 시위가 일어났고 홍콩 입법회 건물이 점거되기도 했다. 홍콩 정부가 주관하는 주권 반환 공식 기념행사는 이례적으로 실내 행사로 이루어졌다.

시위대는 경찰과 무력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은 최루액 스프레이와 곤봉 등 진압 장비를 사용하는 등 시위대 일부가 체포되기도 했다. 이날 시위대 중 여러 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람 장관은 7월9일 100만명(주최측 추산)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나왔던 6월 9일 시위 이후 한 달 만에 송환법이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람 장관이 송환법의 사망을 언급했지만 실제로 법안의 폐기가 아닌 중단인 상황에서 언제든 다시 추진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홍콩인의 시위는 계속됐다.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7월 21일 홍콩시위대를 대상으로 하는 ‘백색테러’가 일어났다. 홍콩 한 전철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흰옷을 입은 남성들이 각목 등을 들고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했다.

이들은 주로 검은 옷을 입은 송환법 반대 시위 참여자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면서 송환법 반대 시위에 불만을 품은 친중파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는 현지 언론의 추측이 있었다.

폭력조직 '삼합회' 조직원 6명이 백색테러의 용의자로 체포됐는데 이들이 경찰과 유착됐다는 소문도 있었다. 한 경찰 지휘관이 경찰 30여 명을 대동하고 흰옷을 입은 남성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유포되기도 했다.

7월 21일 밤 10시 30분경 백색테러 사건이 발생한 직후 수백 통의 신고 전화가 경찰에 쏟아졌지만, 경찰은 최초 신고 접수 후 3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7월 27일 경찰의 금지 방침에도 당시 백색테러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는 경찰의 집회 금지 통고에도 도로 점거 행진을 강행했다. 이에 경찰은 최루탄과 시위 진압용 스펀지탄을 사용해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서면서 부상자도 생겼다.

7월 31일 홍콩 경찰이 송환법 반대 시위 참가자 44명을 폭동 혐의로 무더기 기소했다. 그날 한 경찰은 산탄총처럼 보이는 총을 들고 나타나 아무런 경고도 없이 시위대를 조준하기도 했다.

 

지난 7월21일 홍콩 도심에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경찰이 대치 중인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제공)


◆8월

이달 5일에는 송환법 반대 총파업과 시위로 교통대란이 발생했다. 8개 지하철 노선이 중단되거나 운행에 차질은 빚었고 도로 점거와 항공 관제사 등의 파업 참여로 수백개 항공편도 취소됐다. 주최 측은 50만 명 이상이 총파업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9일에는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사흘간 홍콩 국제공항에서 열려 ‘항공대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11일에는 침사추이 지역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한 여성 시위 참가자가 경찰이 쏜 고무탄 혹은 '빈백건(bean bag gun)'으로 추정되는 물체에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에 홍콩인은 실명 위기에 처한 여성을 기리는 의미에서 헝겊으로 한쪽 눈을 가리고 공항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홍콩시위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13일(현지시간) EU(유럽연합)는 홍콩 사태의 모든 당사자 자제하고 대화 나서야한다고 밝혔고 영국은 폭력은 안된다며 평화적 해결방법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15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 당국의 무력 진압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중국에 의한) 폭력적인 진압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홍콩 시위 타임라인.[사진= 신동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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