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낯선 소재, 장르가 매력이지만 극 중 성동일은 가장 평범하고 친숙한 모습을 표현했다. 구청을 다니는 평범한 공무원이자 세 아이를 둔 아버지 강구를 연기한 그는 어떤 욕심 없이 인물이 작품 안에 녹아드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연기할 때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세 아이의 아빠, 평범한 남편을 염두에 뒀고 저의 실제 모습을 차용하려고 했어요. 영화는 오컬트 장르지만 가족에 관한 이야기, 감정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충분히 강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죠. 내 아이가 아프다면 강구가 중수(배성우 분)에게 그랬듯 울며불며 매달릴 수 있는 노릇 아닌가요? 그런 부분에서 성동일, 그 자체를 보여주려고 한 거죠."
실제로도 평범한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인 성동일은 복잡하게 강구의 전사나 캐릭터를 설정하기보다 텍스트에 그려진 그대로, 강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특별히 힘든 점도 없었다는 그는 "애드리브도 거의 없었다"며 탄탄한 시나리오에 관해 칭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우리 영화의 매력은 악마가 가족으로 변신했을 때, 그 가족이 쏟아내는 말들이 진짜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에요. 그 인물이 할 수 있는 속마음을 악마가 대변하고 있죠. 극 중 엄마가 밥상을 뒤엎거나, 중수가 강구에게 '나는 가족 아니야? 나는 그럼 뭐야?'라고 한풀이하는 장면 등등 (악마가 변신하지 않은) 실제 인물이어도 할 수 있는 말인 거예요. 개개인이 느낄 수 있는 극단적 상황과 감정을 잘 그렸고 치밀했다고 봐요. 이런 점이 더 공포스럽고 특이하게 느껴졌고요."
"연기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강구와 중수가 만나 두려움과 원망을 쏟아내는 모습에서 감정이 마구 올라오더라고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했는데 정작 김홍선 감독은 탐탁지 않아 했어요. '너무 올드하지 않냐'고. 하하하. 눈물이 고여있는 정도에서 마무리했죠."
성동일과 김홍선 감독은 그야말로 최적의 파트너다. 영화 '공모자들'(2012)부터 '기술자들'(2014), '반드시 잡는다'(2017), '변신'(2019)까지 벌써 4번째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고, 파악하며 함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공모자'와 비교한다면 정말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죠. 당시에는 정말 많이 찍었거든요. 드라마 PD 출신이라 만들어 가는 드라마와 만들어놓고 선보여야 하는 영화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던 거 같아요. 결과를 알 수 없이 달려야 하니까 불안한 마음에 더 많이 찍었던 거였죠. 그런데 '반드시 잡는다'부터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커트 수도 줄이고 절제하기 시작했어요. '드라마 톤을 벗었다'는 칭찬도 들었고요."
'변신'은 '반드시 잡는다' 때보다 커트 수가 30~40%가량 더 줄었다고 한다. 김홍선 감독의 성장과 자신감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대로 현장 편집을 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필요한 장면만 찍었어요. 편집할 때 시나리오 3장씩 날리는 영화도 있는데 우리는 버릴 게 하나도 없었죠."
소모적인 연기를 할 필요 없었기 때문에 '변신' 배우들은 더욱 응집된 연기와 몰입을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절제된 연출이 가져다준 에너지였다.
약 1시간가량 '변신'에 관한 칭찬만 듣다 보니 반대의 상황도 궁금했다. 연기, 감성, 체력 모두 "견딜 만 했다"고 하니,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힘든 일이라···. 연기도 성동일을 보여주면 되고, 촬영 현장도 너무 분위기가 좋았고, 체력도 아직은 견딜 만 해서 번뜩 떠오르는 힘든 일이 없네요. 아! 지하실 장면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건 좀 힘들었어요. 가짜 흙을 뿌리고 지하실에 갇혀있는데 스태프들은 다 마스크를 끼고 배우들은 숨을 헐떡거리면서 연기를 했거든요. 그건 참 힘들었지···. 내가 '우린 인간 필터야'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촬영장 분위기는 가족적이었다고.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가족 만나듯 매일 웃고, 어깨를 다독여주고 장난도 치며 가깝게 지냈다.
"영화가 무거우니까 촬영할 때는 릴랙스된 상태였는데 대기 시간에는 정말 많이 웃고 떠들었어요. '코멘터리 녹음하러 온 거 같다'고 했을 정도니, 분위기가 어떤지 아시겠죠."
실제로도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듬직한 남편인 성동일. 그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배우"라며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제 길거리에서 나 알아봐 준다고 좋아할 나이도 아니잖아요? 저는 그보다 한 집안의 가장, 남편으로 인정받는 게 우선이에요. 이따금 '다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배우가 배우는 길은 영화를 찍는 것뿐이에요. 우리 애들도 예습과 복습을 하니 수학 조금 할 줄 아는 거처럼 연기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지키고 싶은 게 많아 예전보다 겁도 더 많아진 것 같다는 성동일의 모습에서 평범한 우리의 아버지를 보았다. 특히 가족의 이야기를 할 때면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우리 집에는 TV가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의 낙 중 하나가 책을 읽는 일이 됐어요. 특히 우리 딸 빈이는 제가 받은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읽어보더라고요. '아빠, OOO 영화에 OO 역으로 제안받았지?' 하고 먼저 말을 걸기도 해요. '어? 어떻게 알았어?' 하면 '딱 보니 아빠더라'하고 말해주기도 하고요. 하하하."
성동일의 모든 시나리오를 읽는다니 영화 '변신'에 관한 딸 성빈 양의 코멘트도 관심이 갔다. "뭐라고 말하더냐"고 묻자, 성동일은 "무섭다고 하더라"고 답했다.
"너무 무서워서 깜짝 놀랐대요. 우리 둘 다 무서운 걸 잘 못 보거든. '이렇게 무서운데, 아빠 하려고?' 하하하. 제가 자신 있게 이 영화를 선택한 것도 빈이의 역할이 컸죠. 아쉽게 영화 개봉 후에도 (빈이는) 못 보겠지만요. 아이들이 커갈수록 시나리오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그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진 걸 보고 싶어 해서 이제는 아이들도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어졌어요. 그런 작품을 찾고 있기도 하고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