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太湖)물가에서 육우(陸羽)선생 흔적을 더듬다
한문고전을 좋아하는 20여명과 함께 어울린 7말8초의 8박9일 중국 안휘성 절강성 답사과정은 그야말로 ‘다반사(茶飯事 차를 밥 먹듯이 하는 일상사)’였다. 식사자리에는 하루 세 번 반드시 대형 차 주전자가 함께 올라왔다. 밥 먹기 전에 한 잔, 밥을 먹다가 한 잔, 식사를 마친 후에 또 한 잔이 자연스럽다. 그 이유는 모든 요리가 기본적으로 기름에 볶은 익숙지 않은 음식들인 까닭에 느끼한 속을 달래는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일정은 절강성 호주(湖州)다. 동아시아 모든 다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는 고장이다.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육우(陸羽 733~804)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호주는 차 애호가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육우선생 묘소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짙고 푸른 대나무숲 사이의 가파른 경사길이 구비를 돌며 이어지는 계단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더위 때문에 빨리 걸을 수도 없다. 계단이 끝날 무렵 평평한 작은 마당이 나온다. 3단으로 된 시멘트 구조물과 돌 난간을 잡고서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그제서야 봉분이 나타난다. 바닥에서 다섯 겹으로 쌓아올린 벽돌이 무덤 전체를 두른 원형분묘다. 묘 위를 덮고 있는 눈에 거슬리는 잡목도 비석글씨가 주는 이름자의 위엄 앞에 그대로 묻혀버린다. 중심에 검은 큰 글씨 ‘대당육우지묘(大唐陸羽之墓 당나라 육우의 무덤)’가 새겨진 비석이다. 1995년 겨울 ‘호주(湖州)육우다문화연구회’가 세웠다는 기록까지 붉은색 작은 글씨로 좌우의 가장자리에 나누어 썼다. 봉분과 2m가량 사이를 두고서 무덤을 보호하듯 뒤쪽에는 검은색 석판을 둥근 병풍처럼 이어붙여 ‘다경(茶經)’을 새겼다. 배례석의 촛대와 향로는 일상적인 풍광이지만 다신(茶神)의 무덤답게 참배하는 사람들이 차를 올릴 수 있도록 작은 다완 몇 개를 큰 접시 위에 얌전하게 엎어 둔 것이 그동안 찾았던 유명 문인들의 무덤과 차별화된 모습이라고나 할까.
육우선생은 중국다도의 시조로 불린다. 최초로 차에 관한 종합적인 전문서이며 또 다인의 필독서인 불후의 명작 <다경(茶經)>3권을 저술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차 마시는 행위가 이 책으로 인하여 다도(茶道)는 학문과 예술의 경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수행 차원까지 승화될 수 있었다. 차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완벽한 고전으로 저술에만 10여년이 걸린 역작이다. 차를 끓이고 마시는 법에 정신적 가치를 두고 미학적으로 기술한 것은 육우선생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신은 호주땅에서 수십년을 살았다. 호주는 물맛이 좋은 곳이다. 차맛은 결국 물맛이다. 물맛이 좋아야 장맛도 좋고 술맛도 좋다. 따라서 물맛을 제대로 구별하는 능력은 전문 다인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그의 품천(品泉 물 품평능력)솜씨는 타고난 것이다. 차를 달이기 위해 준비된 ‘양자강 가운데로 흐르는 맑은 물’이라고 떠온 것을 맛보고는 ‘그 물이 아니다’라고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물을 가져오던 지게꾼이 넘어지면서 물동이를 엎어버린지라 할 수 없이 남은 물에 다른 물을 섞은 것이었다.
육우 인생의 시작도 물가였다. 호북성 복주(復州) 경릉(竟陵 현재지명은 天門이다) 서호(西湖) 주변에 버려진 아이였다. 기러기들이 떼지어 우는 소리를 이상하게 여긴 지적(智積)스님이 핏덩이인 그를 안고서 돌아온 용개사(龍盖寺)에서 다동(茶童·차 심부름하는 아이) 생활을 하면서 차와 인연을 맺었다. 현재 서호공원(일명 육우공원) 인근에는 선생이 처음 차를 만난 서탑사(西塔寺 옛 용개사)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청년 시절 안록산의 난 때문에 피난 온 강남 땅에서 술과 함께 은자처럼 숨어 지냈다. 그러던 중 태호(太湖)호수 자락에 있는 저산(杼山) 묘희사(妙喜寺)에서 다인인 동시에 학자인 14살 연상의 교연(皎然 720~803)스님을 만나게 된다. 이로부터 ‘차로 술을 대신(以茶代酒)’하며 오랜 세월 동안 승속(僧俗)의 경계를 넘어 망년지교(忘年之交 나이를 잊고 지내는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시와 문장을 짓고 불교를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면서 차의 정신을 논하였다.
이 만남은 육우 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육우는 다예의 중심 지역에서 차문화를 전반적으로 조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물이 <다경(茶經)>이다. 서호에 버려졌던 아이가 드디어 태호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호주라는 지명은 태호에서 비롯되었다). 물가에 버려졌지만 물가에서 활동했고 결국 물가에서 출세를 한 것이다. 당나라 대종(代宗)이 그의 명성을 듣고 ‘태자문학(太子文學 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벼슬을 내렸지만 끝까지 사양했다.
차문화가 일상화된 지역이라 그런지 커피는 흔적조차 없다. 차나무를 매일 만나고 다닌 덕분인지 일주일이 지나도 커피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금단현상도 없다. 보이지 않으니 마실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것인가. 이것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다.
여행 마지막 날 밤 태호(太湖)를 찾았다. 관광지로서 갖추어야 할 인프라를 모두 갖춘 엄청난 규모의 호수공원이다. 갖가지 조명으로 수놓은 야경을 감상하다가 발견한 커피숍에 앉았다. 그동안 커피를 굶은 몸이 빨아들이듯 흠뻑 스며들 줄 알았는데 그냥 무덤덤했다. 차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인가? 하긴 나 역시 커피를 마신 기간보다는 차를 즐긴 세월이 더 길지 않았던가. 여행안내 자료집에 실린 교연스님의 ‘음다가(飮茶歌)’를 읽었다.
일음척혼매(一飮滌昏寐) 한 모금 마시자 혼미함이 씻겨나가고
재음청아신(再飮淸我神) 두 모금 마시자 정신이 맑아지고
삼음변득도(三飮便得道) 세 모금 마시자 도를 이루니
하수고심파번뇌(何須苦心破煩惱) 번뇌를 없애고자 마음 쓸 일이 없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