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한번 쓰기로 작정한 인사에 대해서는 언론의 검증보도를 통해 하자가 드러나거나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여간해서 무르는 법이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했던 고위공직 후보 중에 최종적으로 임명되지 못한 후보는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제외하면 6명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인사청문회 전후에 자진 사퇴한 후보들은 여론의 폭풍우 속에서 청와대와 민주당이 조 후보자를 보호해주는 것을 지켜보면서 억울한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음주운전과 사외이사를 맡은 회사의 일로 논란을 빚은 조대엽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 하나고 학생부에서 아들의 징계 사실이 누락된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 주식거래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의혹이 있는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 역사와 종교관 논란으로 사퇴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줄줄이 쏟아지는 조 후보자의 하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조 후보자와 가족이 과연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언론에 보도되고 사실로 확인된 내용들만 대충 짚어보자. 한영외고에 다니던 딸은 단국대가 대한병리학회에 제출한 논문의 제1저자로 기재돼 고려대 입시에서 덕을 봤다. 단국대 연구과제 시스템에는 고교생이 아니고 ‘박사’로 허위 기재됐다. 2주 인턴을 한 고교생을 박사 학위를 가진 제1저자로 기재한 것은 대학 부정입학을 위한 사기 문서다.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하나고에 다니는 아들의 학생부에 징계 사실이 누락된 것 때문에 인사청문회장에 서보지도 못하고 사퇴했다.
조 후보자의 부인과 자녀는 사모펀드 코링크에 10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조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그런데 조 후보자의 가족과 처가 식구들만 투자한 사실상 친족펀드다. 코링크는 2017년 가로등 점멸기 제조회사에 투자해 최대주주(38%)가 됐다. 이 회사는 2017년 8월 이후 지자체와 공공기관 47곳에서 31억9242만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83%가 더불어민주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지자체다.
조 후보자의 동생은 어머니가 이사장인 웅동학원의 땅을 담보로 사채 14억원을 빌려 썼다. 조씨 동생이 갚지 못한 빚은 55억원까지 불어나면서 웅동학원의 토지가 가압류됐다. 조 후보자는 웅동학원의 재단이사다. 형사처벌까지 갈 수 있는 사학비리다.
조 후보자의 딸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두 차례나 낙제를 하면서도 장학금을 연속으로 6학기나 받았다. 그전에 조양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한 학기 3학점을 수강하고 두 학기 장학금 800만원을 수령한 뒤 부산대 의전원으로 ‘먹튀’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조양의 행태에 대해 “환경대학원의 졸업생과 재학생들에게 자괴감과 박탈감을 주었다”고 토로했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가볍지 않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무거운 부담을 안겨주면서 버티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서울대생들도 촛불시위를 벌이는 마당에 서울대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전망이 어둡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발탁한 이유 중에는 검찰 개혁을 완수하라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도덕성으로 검찰개혁을 하겠다고 나서면 과연 검찰이 승복하겠는가. 법무부장관을 하면서 딸의 부정입학, 친족펀드, 사학비리와 관련해 수사를 받아야 할 판이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 같지만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말을 못했다. 그동안 언론보도에 대해 ‘가짜 뉴스’ 운운하며 조 후보자를 감싸다 23일 이해찬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조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 상황은 청문회까지 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민심이 악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게 사과로 끝날 일인가.
시중에서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와 조 후보자의 딸을 비교하는 말이 나온다. 정유라가 이화여대 면접시험장에 들고간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가짜가 아니었다. 연령대별 민주당 지지율에서 20대의 지지율이 현격하게 감소했다. 조 후보자의 딸이 20대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의 가족은 부동산 투기에도 발군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자산가치가 폭락했을 때 집 두 채를 사들여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흉년이 든 해에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 헐값에 내놓은 논밭을 사지 말라는 경주 최 부자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말다.
학벌 좋고 인물 좋고, 민주당의 PK라는 점에서 그를 잠재적 대선 후보로 꼽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시구(詩句) 서해맹산(誓海盟山)을 인용할 때까지 만해도 그럴 듯했다. 조 후보자에게 강남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강남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다. 집 없는 서민 표도 달아나고, 청년실업에 한숨 쉬는 20대 표도 무너지고 있다. 말과 겉만 번지르르한 금수저 좌파를 계속 껴안고 가다간 총선에서 청년과 서민의 표가 뭉텅이로 달아날 판이다.
조 후보자는 일요일인 25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국민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고 사과하면서도 인사청문회까지 사퇴하지 않고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도 임명을 강행하려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드러난 조 후보자 일가의 행적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번 사태는 판가름날 것이다. 앞으로 사나흘이 고비가 될 것 같다. 조 후보자는 그를 아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그리고 본인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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